20대의 양귀비는 40대의 안록산을 수양아들로 삼고 그를 매우 가까이 하였다. 일설에는 양귀비가 안록산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현종은 안록산과 양귀비의 관계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양귀비가 안록산을 총애하는 것만큼 더욱 안록산을 높은 지위로 등용하였다. 그것이 양귀비의 6촌 오빠인 양국충과 안록산 사이에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양국충은 안록산의 성장에 위협을 느끼고 그를 제거하려 하였다. 이를 눈치 챈 안록산은 변방에서 난을 일으키고 곧이어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까지 쳐들어 왔다. 이것이 바로 안사의 난이다.
현종은 양귀비를 데리고 서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장안에서 100여리쯤 가 섬서성 마외파에 도착했을 때였다. 성난 군중들과 현종을 호위하던 병사들은 나라꼴을 이렇게 만든 양귀비와 그 일족들을 처벌하기를 원했다.
현종은 사랑과 목숨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는 양귀비와 함께 장렬히 죽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종은 양귀비를 보호하지 않고 그녀에 대한 백성의 분노를 수수방관함으로써 그녀에게 죽음을 종용하였다. 정치를 내팽개치고 나라를 몰락하게 만든 모든 책임을 양귀비에게 덮어씌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종은 사랑보다는 자신의 목숨을 선택했다. 결국 현종의 뜻을 알아차린 환관 고력사가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양귀비가 자결 아닌 자결로 생을 마감하고 나자 현종은 그녀의 시체를 수습해 인근 조그마한 산에서 장사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