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터의 구렁이 <여주·신륵사> 초여름 새벽, 한 젊은이가 길떠날 차비를 하고 나섰다. 『어머님, 다녀 오겠읍니다. 그동안 건강에 유의하십시요.』 『내 걱정 말고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그리고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여자를 조심해라.』 『네, 명심해서 다녀오겠읍니다.』 봇짐을 고쳐 멘 젊은이는 늙은 어머님을 혼자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어머님 계신 방문을 되돌아보며 사립문을 나섰다. 젊은이는 어머님 꿈이야기가 왠지 불길했다. 해가 떠오르자 날씨가 더웠다. 젊은이는 강가로 내려가 저고리를 벗고 얼굴을 씻었다. 기분이 상쾌하면서 시장기가 들었다. 젊은이는 물가에 앉아 주먹밥을 먹었다. 길 떠날 준비와 혼자 계신 어머님을 위해 집안 일을 살피느라 간밤에 잠을 설친 젊은이는 포만감과 함께 졸음을 느꼈다. 얼마쯤 잤을까. 젊은이는 문득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살폈다. 주위는 여전했다. 『분명 꿈을 꾸었는데… 이상하다. 전혀 기억이 안나다니.』 그러나 꿈은 풀리질 않았다. ─얘야, 부디 여자를 조심해라─. 신신 당부하시던 어머님 말씀을 떠올리면서 젊은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여자가 있었던가?』 젊은이는 꿈 속을 더듬으며 개나리 봇짐을 어깨에 메는 순간 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렇지, 봇짐 속을 보자.』 젊은이는 짐을 풀었다.순간 젊은이는 화다닥 뒤로 물러섰다. 한 마리의 큰 구렁이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젊은이가 큰 돌멩이를 들어 구렁이를 향해 던지려하자 구렁이는 스르르 몸을 풀어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따. 젊은이는 돌을 든 채 물끄러미 구렁이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그래, 저 구렁이가 사공에게 쫓기던 여인이 틀림없어.』 젊은이는 비로소 꿈속의 일을 기억해냈다. 스승의 심부름으로 나루터에 도착한 한 童子僧이 사공에게 배를 태워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뭐 강을 건너게 해 달라고? 꼬마상좌가 돈이 어디서 나서 배를 탈려고 해. 중이라고 배를 거저 탈 생각은 아예 말아야 한다.』 『네, 배삯은 있읍니다. 태워 주세요.』 『어디 그럼 삯먼저 내놔봐.』 童子僧은 엽전 꾸러미를 꺼냈다. 돈 꾸러미를 본 사공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너 그 돈 어디서 난 거냐? 바른대로 이르지 않으면 관가에 고할 것이다.』 『이 돈은 報恩寺를 중창할 시주돈예요. 스님께서 강건너 대장간에 갔다 주라고 하셔서 가는 길입니다.』 동승은 또렷또렷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건네주지. 어서 타거라.』 동자승을 태운 배가 강심으로 밀려나갈 무렵 한 여인이 헐레벌떡 뛰어오며 나룻배를 불렀다. 『여보세요, 잠깐만 기다려요.』 『안돼요. 배를 띄웠으니 다음 차례를 기다리시오.』 『잠깐만 사공, 저 여인을 태우고 함께 갑시다.』 동자승이 사공에게 청했으나 사공은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여기 탄 손님은 스님이라 외간 여자와는 함께 타지를 않소.』 『아니 내가 언제 그랬소. 기왕이면 함께 가는 것이 사공에게도 이롭지 않소. 어서 배를 기슭에 대세요.』 사공은 하는 수 없이 배를 기슭 여인을 태웠다. 『고맙습니다. 스님.』 여인은 동자승을 향해 인사를 하더니 허리춤에서 엽전을 꺼내 사공 빌밑에 던졌다. 그리고 나서 동자승을 향해 돌아 앉았다. 『스님은 어디로 가세요?』 『예, 절 중창에 필요한 연장을 마추러 대장간에 가는 길입니다.』 『절을 중창하시면 시주를 거두시겠군요. 저도 시주를 하고 싶으니 저희 집에 같이 가 주시지요.』 『고맙습니다. 소승은 보은사 사미승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공이 갑자기 노를 들어 여인을 후려치며 외쳤다. 사공이 내려치는 노를 피해 물 속으로 뛰어든 여인은 금방 한마리의 큰 암구렁이가 되어 달아났다 그 바람에 놀란 젊은이는 잠에서 깼다. 해가 서산에 기울 무렵 젊은이는 나루터에 닿았다. 늙은 사공이 빈 배에 앉아 있었다. 『노인장 나루를 건네 주시겠읍니까?』 『어서 타시시요. 헌데 젊은이 이렇게 늦게 어디를 가시오.』 『과거를 보러 가는 길입니다.』 『나루를 건너면 30리 안에는 인가가 없는데 어디서 유하실려고?』 『인가가 없다니요?』 젊은이는 그제사 사공을 똑바로 보았다. 꿈속의 그 사공과 닮은 것 같았다. 『이곳이 麗江나루가 아닙니끼?』 『여강 나루이지요. 그러나 젊은이는 새벽부터 길을 잘못 들었소. 젊은이는 오늘 낮에 강가에서 암구렁이를 보았지요. 이 길은 저승으로 통하는 길이오. 나루를 건너면 報恩寺가 있지만 누구도 살아서 절에 닿는 사람은 없소.』 『노인장, 저는 그럼 죽은 것입니까? 산 것입니까?』 『죽지는 않았소이다. 다만 젊은이의 孝心 때문에 여기 이른것이오. 당신 어머니는 오늘 아침 당신이 길을 떠나자 곧 숨졌소. 지금은 보은사 羅殺이 됐는데 절이 퇴락해 거처할 곳이 없어 절 아래 동굴에 머무는데 그곳은 百?女라는 마귀의 집이라오. 그 마귀는 당신 어머니께 집을 빼앗기고 화가 나서 당신을 해치려 했으나 다행히 나한테 들켜 당신을 해치지 못한 것이오.』 『그러면 꿈속의 동승이 저입니까?』 『그렇소. 당신 전생 모습이오. 전생부터 보은사 중창서원을 세운 당신은 아직도 이행 못하고 있소. 오늘 이런 기회도 모두 부처님의 계시입니다.』 조선 성종 4년, 장원급제하여 여주 고을 원님이 된 젊은이는 대왕대비 특명으로 보은사를 크게 중창했다. 그후 부처님 신탁으로 중창했다 해서 神勒寺라 개칭했다. 지금도 신륵사 탑 밑에는 젊은이의 어머니인 나찰이 살고 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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