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고서화(古書畵)

[스크랩] 김두량의 <긁는 개>와 <삽살개>

감효전(甘曉典) 2012. 2. 20. 22:36

2006년은 병술년(丙戌年) 입니다.  술(戌)이란 개를 가리킵니다. 즉 ‘개띠 해’입니다.  

   

애완견을 기르시는 분이나 개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반가운 해일 것 같습니다. 인간이 개와 함께한 세월은 2만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아마 지구상의 그 어떤 동물들 보다도 우리와 함께 살아온 동물이지요. 그만큼 친숙한고 친근한 동물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개인적으로는 개를 기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수명이 긴 견공이라도 사람보다는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이기에 그 아픔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기억에서도 가장 많이 울었던 기억은 오랫동안 기르던 개가 늙고 병들어 할 수 없이 어머니께서 개장수에게 보내셨을 때입니다. 언제나 헤어짐은 견디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얼마 전 어떤 훌륭한 블러그에서 노만녹웰 이란 화가가 그린 개의 그림들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그 그림들은 희로애락 하는 인간의 옆에 항상 든든한 위안이 되는 개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었습니다. 또 개와 인간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도 보여주고 있는 그림들입니다. 하지만 그 개들은 인간과 같이 있을 때만 의미를 지닌 개들입니다. 개 자체가 그림의 주인공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옛 그림들에서는 개를 어떻게 그렸고, 어떤 의미일까요?

 

먼저 십이지간의 의미로서 개를 많이 그렸습니다. 개는 12종류의 띠 동물 중 11번째. 시간으로는 오후 7~9시, 방향으로는 서북서, 달(月)로는 9월을 지키는 방위신이자 시간 신입니다

 

 

 

투박한 솜씨로 개와 각 띠 동물을 그리고 점괘를 풀어놓은 당사주책이다. 개띠에 태어난 사람은 처음에는 고생하지만, 나중에는 영화와 부귀를 얻을 수 있는 운세라고 적혀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또 삼재를 쫗는 벽사의 의미로 그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 경우에는 눈을 세 개를 그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목에 방울을 달고 있는 검은 개의 모습으로, 세 개의 눈을 가지고 사람들을 지켜준다.

접은 흔적이 있어 휴대용 부적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그림들은 예술작품이라기 보다는 주술적 필요의 의해서 그려진 게 대부분이기에 예술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조선시대에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견도로는 '모견도'가 있습니다.

 

 

 

 

 

                 이 암  <모견도>                                         김홍도 <모구양자도>

 

 

'모견도'는 왕의 종친이었던 이 암이 자기 새끼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미개의 사랑스러운 표정이 넘치는 그림인데 개 목에 목걸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왕실에서 기르던 개를 모델로 삼아 그린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런 풍은 후기 김 홍도의 '모구양자도'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세밀한 필치로 그린 어미개의 얼굴을 보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 하고 싶은 그림은 이 암과 김 홍도, 또는 가장 나중에 그려진 오 원 장승업의 개 그림이 아니고 조선 견도의 대표작 김 두량의 '긁는 개'와 '삽살개'입니다. 왜 많은 작품 중 이 작품을 말씀 드리는 이유는 김 두량의 작품이 기존 우리나라의 화풍에다가 서양 기법을 접목 시켜 조선 그림을 한 차원 새롭게 발전 시킨 그림이란 점과 바로 개의 본성, 즉 개가 가지고 있는 충성과 의리의 충복, 심부름꾼, 안내자, 지킴이로 의미를 가장 잘 살려냈다는 점 때문입니다. 
 

 

먼저 '긁는 개'를 감상해보시겠습니다.

 

 

 

  <긁는 개>  조선 (18세기 중엽)  지본수묵 (紙本水墨)  23*26.3cm 국립중앙박물관

 

 

뒷다리를 들어 가려운 곳을 긁는 모습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그린 그림인데 그 화흥(畵興)이나 묘사의 기교 등 독특한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긁는 개는 집안에 복을 가져온다는 이야기가 있어 예부터 많이 그려졌습니다. 그 중 나무 밑에 있는 개는 집을 지킨다는 의미로 그렸습니다. 그렇다면 나무와 개가 어떤 상관으로 그런 의미를 나타내는 것일까요? 

 

개는 '戌'(개 술)이고, 나무는 '樹'(나무 수)입니다. '戌'은 '戍'(지킬 수)와 글자 모양이 비슷하고, '戍'는 '守'(지킬 수)와 음이 같을 뿐만 아니라 '樹'와도 음이 같기 때문에 동일시됩니다. 즉 술수수수"戌戍樹守"로 도둑맞지 않게 잘 지킨다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개의 그림을 그려 붙임으로써 도둑을 막는 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일종의 주술적 믿음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고구려 고분의 전실과 통로 벽면에도 무덤을 잘 지키라는 의미에서 개 그림을 그려 놓은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가려워 죽겠다는 표정과 긁어서 시원하다는 표정이 동시에 담겨 있는 표정이 압권인 이 그림은 표정의 익살스러움뿐 아니라 사실적 묘사가 돋보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수법의 묘미는 김 두량의 새로운 묘사기법과 더불어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표현이었습니다. 고전적인 동양화법으로 그려진 배경인 초목의 거친 묘사와 대조적인 털과 몸의 명암법을 이용한 입체적 표현기교는 서구적 묘사기법, 즉 태서법을 사용하여 고전과 당시 새로운 화법을 접목시켜 성공 시킨 뛰어난 작품입니다. 

 

화가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드리면 김 두량(金 斗樑. 1696-1763) 자는 도경(道卿), 호는 남리(南里) . 예천(藝泉)으로 영조 대에 주로 활동한 화원으로 산수. 인물. 영모 등에 두루 뛰어났습니다. 그의 부친 김 효경도 화가였으며, 아들 김덕하가 1748년 숙종 어진 모사에 참가한 화원인 것으로 보아 화업을 대물림 한 집안임을 알 수 있고 더욱이 외조부인 함제건도 화원으로 1682년 통신사행의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바 있어서, 김 두량의 오랜 집안 배경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조가 남리라는 호를 직접 내렸고 평생 봉록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할 정도로 아꼈던 화가였으며 화원의 최고위직인 별제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집안이 화가 집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김 두량은 17세 때 그림공부를 위해 해남에 살고 있던 공재 윤 두서를 찾아가서 그에게 그림공부를 사사 받습니다. 연도를 따져보면 아주 오랫동안 배우지는 못했지만 여러 방면의 능숙한 그림 실력은 다방면에 능숙했던 공재 윤 두서의 영향이 매우 컸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또한 아주 세밀한 필치는 윤 두서를 빼다 박았으며 서양화법인 태서법도 중국 신경향에 대해 많은 서적을 보유했던 윤두서 밑에서 접했을 것입니다. 사대부가 양반으로서 중인인 김 두량을 집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그림공부를 시켰던 공재 윤 두서의 모습은 서인들에게 뿌리깊은 원한을 갖은 남인 집안에서 서인 친구들과 스스럼 없이 교제를 했던 윤 두서의 열린 자세가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조선 회화에서 윤 두서의 업적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그림인  <삽살개> 를 한번 볼까요?

 

 

 

 <삽살개>  1743  지본담채   35 X 45 cm  개인소장

 

 

삽살개는 '삽살개 있는 곳에 귀신도 얼씬 못한다'는 속담처럼 삽살개는 악귀를 쫓는 것으로 간주됐습니다.  이름 자체가 없앤다, 쫓는다를 의미하는 '삽'과 귀신 혹은 액운을 의미하는 '살'의 합성어라는 점은 삽살개가 갖는 문화적 상징성을 잘 말해줍니다. 

 

한자로는 삽살개 방(尨)으로 쓰는데 눈빛이 형형하기로 소문난 황희 정승의 호인 방촌도 '삽살개마을' 이란 뜻으로 붙여졌던 호입니다.  아무튼 이 그림이 중국과 일본을 거쳐 1995년 7월 부산 진 화랑에서 처음 모습을 들어냈후에 일대 대 격론이 벌어집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눈을 가릴정도로 털이 북실북실 하고 귀여운 모습의 삽살개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꼬리가 올라가 있으며 머리와 다리에 털이 없다는 점에서 기존 털이 북실북실한 삽살개가 토종 삽살개가 아니라는 주장과 그림의 개가 삽살개가 아닐지도 모르고 모양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삽살개의 모습이 한가지는 아니라는 주장으로 애견업계가 둘로 나뉘면서 격돌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논쟁은 급기야 10월 MBC PD수첩에까지 보도가 될 정도로 굉장했으며 아직도 그런 상반된 주장을 서로 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개가 삽살개라는 주장의 근거는 이 그림이 후대의 어느 소장자가 다른 화가 8명의 그림과 함께 묶은 ‘제가명품화첩(諸家名品畵帖)’이란 이름으로 전해진 화첩에 있는데 여기서 소장자가 김 두량의 개 그림에 대해 “내가 방(尨) 그림 한 본을 구했더니 필세가 발랄하고 묘하다”고 평해놓고 있습니다. 또한 삽살개가 귀신을 쫓을 만큼 매서움이 상징하는데 그림의 날카로움과 날렵함이 바로 그런 모습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 그림은 삽살개라는 점은 미술 사가들에게서는 거의 공인된 부분입니다.   

 

아무튼 이 <삽살개>는 조선 토종 삽살개의 사나움을 옆모습으로 포착한 것으로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응시하며 입을 벌려 짖고 있는 모습과 왼편 앞발과 오른편 뒷발을 들어올려 곧 덤벼들 듯한 기세를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김 두량은 이 그림을 그린 후 영조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궁중화원으로서 아마 새로 고전화법과 접목시킨 태서법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추측되기도 하고 영조에게 자신의 충직함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그림을 말없이 바라보던 영조는 그림 위에다 보이는 바와 같이 화제를 적어놓았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립문을 지키는 것이 네 임무거늘

   어찌하여 낮에 또한 여기에 있느냐

 

그림 속에 개를 하나의 살아있는 동물에게 말하듯이 글을 써놓는 낭만을 가진 서화애호가였던 영조. 그가 나중에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고 나서 감당해야만 했던 심적 고통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사나움에 어울리게 삽살개의 몸과 꼬리의 섬세한 털 처리도 빼어나며, 털 색상의 차이로 생긴 얼룩도 삽살개의 사실성을 돋보이게 합니다. 그리고 개가 서 있는 땅바닥은 둔탁한 녹색 점으로 처리하여 삽살개의 정밀한 묘사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윤 두서로부터 이어져온 초상화에도 뛰어났던 김 두량의 전신수법과 서양화법의 입체감이 기운 생동하는 사실 형상을 만들어낸 것으로 아주 훌륭한 그림된것입니다.  

 

 이처럼 김 두량의 견도(犬圖)는 충직과 충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개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늘 인간의 주위에서 존재해 왔습니다. 때로는 구박과 멸시와 버림을 받고, 지신의 몸을 희생하기도 했기에 전국 각처에 의로운 개를 기리는 비석과 상징물이 많이 있습니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獒樹里)의 의견비. 불타 죽어가는 주인을 살리기 위해 근처 강물에 몸을 적셔 불을 껐다는 내용이 고려시대 최자(崔滋)가 지은 '보한집(補閑集)'에  기록돼 있습니다.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고 충견은 불사이주(不事二主)라 합니다.

비록 시대가 바뀌어 개가 비천하고 나쁜 의미, 심지어는 욕지거리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 서로간에 이익이 되지 않으면 가차없이 매정하게 돌아서는 현재에 개가 가지고 있는 의리, 나라와 사회에 대한 책임과 봉사의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는 병술년이 되길 바래봅니다.

 

 

 

2006 . 2 . 2

 

 

금강안金剛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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