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학

[스크랩] 암환자 수천 명을 살린 명의, 심선택 선생

감효전(甘曉典) 2012. 2. 18. 22:05
  • 암환자 수천 명을 살린 명의, 심선택 선생
  • "배를 잘 살피면 어떤 암이든지 고칠 수 있는 법이오"   "병을 고치는 것도 전쟁이나 마찬가지예요. 병을 못 고치면 사람이 죽는 겁니다. 나는 이 병을 못 고치면 내가 죽는다는 각오로 치료에 임합니다. 그렇게 해야 실수가 없어요. 나한테 오는 사람은 전부 말기 암환자들이예요. 염라대왕 문턱까지 와 있는 사람들입니다. 음식이 안 넘어가고 대변도 안 나오며 몸무게가 20킬로그램이나 30킬로그램이 줄어든 사람이 많아요. 얼마 전에 환자가 한 사람 왔는데 몸무게가 35킬로그램밖에 안 돼요. 병원에서 장암으로 진단을 받았다고 하는데 내가 배를 만져보니 뱃속에 딱딱한 돌멩이 같은 것이 수십 개 꽉 차 있어요. 약을 줘서 덩어리 삭이고 대변 나가게 해 줬더니 이제 살 것 같다고 하더군요. 결국 이 사람이 낫기는 나았어요."    구석구석 약초 내음에 절어 있는 제기동의 허름한 뒷골목. 어느 녹슨 철대문 안 허물어져 가는 한옥에 방 한 칸을 얻어서 지내는 심선택(沈璇澤 : 64세) 옹은 40년 동안 의술을 연구하여 암, 정신병, 간질 등 현대의학이 포기한 난치병자 수백 명을 치유한 기인(奇人)이다. 그 치료법은 기이하고 효과는 빠르고 정확하며, 숨이 넘어 가는 사람을 살려 내고도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의사면허가 없어 돌팔이임을 자처하고 있으나 그야말로 진짜 명의 중의 명의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는 복진법(腹診法) 곧, 배를 자세히 관찰하여 병을 진단하고 의 처방으로 환자를 치료한다. 40년 동안 수백 명의 암환자를 완치하였으며, 암뿐만 아니라 간경화증, 간질, 정신병, 신경통, 관절염 등 어떤 병이든지 못 고치는 병이 거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는 가장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방법, 곧 고방(古方)으로 가장 고치기 어렵다는 암을 전문으로 치료한다. 그의 진단법과 치료법은 요즘 한의사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방법과 전혀 다른 것 같으면서도 가장 깊이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가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진단법은 복진법, 곧 배를 자세히 살피는 것이오, 치료법은 고방, 곧 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배를 잘 살펴 정확하게 처방을 하면 세상에 못 고치는 병이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40년 동안 암환자 수백 명을 고쳐 "40년 동안 암환자를 치료하면서 죽을 사람을 살리기도 많이 했으나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내가 잘못하여 죽게 한 일도 많았습니다. 나도 처음에는 암이라는 병의 정체를 잘 몰랐어요. 그 때는 내가 살린 사람보다 죽인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치료하던 환자가 죽으면 진흙탕에 꿇어앉아 밤을 새우며 통곡을 했습니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내 잘못으로 죽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이제야 암의 정체를 좀 안 것 같습니다. 거의 실수를 하지 않고 환자를 치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은 지금부터 1천 7백년 전 중국 후한(後漢)의 장중경(張仲景)이라는 사람이 쓴 동양의학의 고전으로 상한(傷寒)이라고 하는 급성 열병의 증상과 치료법을 경과에 따라 기술한 책이다. 말고 도 장중경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것은 주로 만성질병의 증세와 치료법을 적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과 등에 기재되어 있는 처방을 고대의 의학사상으로 회귀한다는 뜻에서 고방(古方)이라고 하고, 그 뒤 금(金), 원(元), 명(明), 청(淸)나라 때와 현대에 만든 처방을 후세방(後世方)이라고 한다. 요즈음 우리나라, 중국, 일본을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동양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후세방을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심선택 옹은 철저하게 고방을 고집하고 반드시 고방을 써야만 근본적으로 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후세방에는 복진법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정확하게 진단을 해서 약을 쓸 수가 없고 본래 고방에 있던 처방에다 약재를 하나 둘씩 계속 보태다 보니 처방만 복잡해진 겁니다. 한 처방에 약재를 대개 30-50가지씩 넣어요. 나는 한두 가지, 많아야 7-8가지밖에 안 넣어도 병이 잘 나아요. 잘 낫는데 처방을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주변에서 약 짓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후세방을 공부하는 사람들이고 고방을 연구하는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어요. 그러니 고방을 하는 사람은 참 외롭습니다. 고방과 후세방을 총에 비교하면 고방은 외알탄과 같고 후세방은 산탄총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고방을 목표물을 정확하게 조준해서 상대방을 한 방에 나가떨어지게 하는 것과 같고 후세방은 산탄을 수없이 퍼붓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탄총으로는 그 파편에 맞는 것도 있고 안 맞는 것도 있으며 빗맞는 것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결국 산탄총 파편에는 정확하게 맞아도 잘 나가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곰을 잡으려면 총알이 굵은 총으로 한 방에 쓰러뜨려야지 꿩 잡는 총으로 잡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고방은 한 방에 상대방을 나가떨어지게 하는 위력이 있지만 그만큼 까다롭고 위험이 따릅니다. 잘 쓰면 어려운 병을 약 한두 첩에 뿌리뽑을 수 있지만 잘못 쓰면 오히려 목숨을 잃게 할 수도 있습니다. 대신 후세방은 위험은 적지만 병의 뿌리를 완전히 뽑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후세방을 쓰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처음에는 병이 잘 낫다가 웬만큼 지나면서부터는 효과가 없다고 해요. 이것이 후세방의 한계입니다. 처음에 잘 낫다가 갑자기 콱 막히면 방법이 없는 거예요. 고방은 참 어렵습니다. 병의 경중과 허실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고방을 쓸 수 있습니다."  상한론은 한의과대학에서 반드시 배우는 책이지만 그 내용이 너무 어려워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고 배우기도 어려우며 실제 임상에서도 그다지 쓰지 않는다. 중국이나,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은 거의 버려진 의학이다. 심선택 옹은 이 버려진 의학에 통달하여 어떤 병이든지 마음대로 고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해 의술 공부  심선택 옹은 청송 심씨로 경북 청송 사람이다. 여섯 살 때 고향을 떠나 강원도 평창군의 깊은 산골에서 자랐다. 어려서 서당에 다니며 한문을 배웠으며 학교라곤 초등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다. 시골에서 농사 짓고 땔나무 구하러 산에 다니면서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의술공부에 몰두하게 된 것은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서른 두 살 때 그는 와사풍 곧, 안면신경마비증에 걸렸다. 어느 날 갑자기 얼굴 근육이 마비되어 한 쪽 눈을 감을 수 없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며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 몇 군데 병원에 가서 약을 지어 먹고 치료를 받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의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자기 병을 스스로 고쳐 보기로 작정했다. "내 병을 고쳐 보겠다고 의학을 공부했어요.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책을 보고 혼자 공부했지요. , 같은 책을 보니 꽤 재미가 있어요. 가끔 환자 치료를 해 보니 잘 낫고. 그런데 내가 의학을 좀 안다고 소문이 나자 암, 중풍, 폐결핵 같은 이런 난치병자들만 몰려왔어요. 그래서 이나 에 나와 있는 대로 약을 써 보니 잘 낫지를 않아요. 그래서 의술의 근본이 뭐냐, 근본을 찾으려면 같은 후세방(後世方) 보다는 고방(古方)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고방이란 어떤 것이냐, 이건 수천 년 전에 성인들이 만든 처방이라. 후세방은 무언가 결함이 있지만 고방은 완전해요. 그래서 고방을 찾다가 상한론(傷寒論)을 공부한 거라. 스승이 없으니 순전히 경험으로만 공부를 했지요. 나뭇짐 지고 오면서도 책을 읽고, 버스 타고 가는 중에도 책을 읽고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공부했지요. 병을 치료하는 것, 특히 암환자를 고치는 것은 전쟁과 같습니다. 전쟁에서 적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 겁니다. 환자 치료도 마찬가지예요. 병을 고치지 못하면 내가 죽겠다는 자세로 의술을 다루어야 하는 겁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호랑이 굴에 들어가겠다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의사가 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죽을 사람을 살린 감초의 신비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의술공부에 몰두하여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자 그는 시골 한의원에 취직을 했다. 그가 환자를 잘 본다는 소문이 나자 사방에서 환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그의 처방대로 약을 쓰면 신기하게도 잘 나았다. 중풍, 관절염, 신경통, 암 난치병자들만 줄지어 몰려 왔고 그는 열심히 치료를 했다. 자궁암을 몇 사람 고쳐 주었더니 자궁암을 잘 고친다고 소문이 나서 자궁암 환자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온 적도 있었다. 평창, 영월의 주천, 제천 등에서 환자를 보다가 1983년에 서울로 올라왔다.  병원에서 골수조직구암으로 사망 직전에 있는 사람을 살린 것이 서울로 올라오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암환자를 한 사람 고치는 바람에 서울에 오게 됐어요. 어떤 한의사의 친척 형님인데 서른 다섯 살이고 키가 크고 똑똑한 사람이라. 그 때는 취직하기가 어려웠는데 이 사람이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해서 밤낮없이 일을 너무 열심히 하다가 쓰러져 의식을 잃었어요. 병원에서 원인을 알 수 없어서 조직검사를 보니까 골수조직구암이라는 진단이 나왔어요. 그 병원이 서울대학교 병원입니다. 골수 조직구암이 그 때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라. 그전에는 그런 병이 없었대요. 그러니 치료법이 있을 리 없지요.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 주시오 하고 가족들이 부탁을 해서 저독성 항암제를 경구투여 했어요. 그랬더니 환자가 의식이 회복되는 듯 하다가 그 다음날 다시 항암제를 투여했더니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렸어요. 죽은 것처럼 되어버린 거라.  의식을 잃은 지 4일 째 되는 날에 연락을 받아 가 봤어요. 병원에서는 아무 치료도 하지 않고 알부민 주사로 목숨만 붙어 있게 할 뿐이라. 내가 진찰을 하러 들어가니 친척 동생인 한의사가 먼저 기도를 해요. 하나님께서 심선생님한테 능력을 주셔서 형님이 빨리 살아나게 하시든지 아니면 천국으로 보내시든지 하나님 뜻대로 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환자는 얼굴과 온 몸이 노랗고 눈동자가 축소되었으며 혀가 나오지를 않아요. 열은 40도가 넘고 맥은 1분에 220번 뛰고 땀이 물처럼 흘러내렸습니다. 이미 시체와 다름없는 사람한테 무슨 약을 줄 수 있겠어요. 가족들한테 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화타나 편작 같은 명의가 와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을 하는 중에 무언가 이마에 와 닿는 느낌이 있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약 한 첩만 써 보십시오' 이렇게 말이 나왔어요. 그런데도 가족들은 아무 표정이 없어요. 이미 죽었다고 단념한 거지요. 나는 환자의 동생을 데리고 한의원에 와서 감초 7돈(26.5그램)을 싸 주며 달여서 세 번 입에 넣어 주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환자의 동생이 와서 '형님이 살았습니다. 아침 식사도 하시고 신문도 보시고 걸어다니기도 하십니다' 하는 거라. 나는 꿈인지 생신지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믿을 수가 없어서 급히 한의원 원장을 불러서 병원에 갔어요. 키가 훤칠하게 큰 환자가 문 앞에 걸어나오며 악수를 청했습니다. 우리는 굳게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어느 사이에 피부의 노란 색이 완전히 사라지고 살결이 하얗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내가 감초를 준 것은 환자가 과로로 쓰러져 탈진한 상태인데 독한 항암제를 써서 죽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환자는 암으로 죽는 것이 아니고 항암제의 독성 대문에 목숨을 잃는 것이 틀림없다, 눈과 온 몸이 노란 것도 항암제의 독 때문이다 이렇게 판단한 것이지요. 그러면 감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해독제라. 항암제의 독도 풀고 전에 석유를 마시고 죽으려 죽어 가는 사람을 감초로 살려낸 적이 있어요. 그 뒤로 환자는 기력이 회복되어 한의원으로 나를 찾아왔어요. 다들 죽은 사람이 살아왔다며 기뻐했지요. 그 일 뒤에 시골로 바로 내려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내가 죽은 사람을 살렸다고 한의사들한테 소문이 났어요. 한의사들이 앞다투어 찾아와서 선생님 그 좋은 의술을 저희들한테도 좀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간절하게 부탁을 하는 바람에 서울에 눌러앉아 지금까지 15년 동안 한의사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게 된 것입니다."  배를 살피는 의술 그는 환자의 배를 보고 병을 진단한다. 배의 모양을 눈으로 살피고 손으로 눌러서 아픈 곳이나 딱딱한 곳을 찾아내어 병이 어디에 있으며 얼마나 중한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는 어떤 병이든지 배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배를 잘 살피면 만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한다. 곧 환자한테 어디가 아프냐고 물을 필요도 없이 배만 만져보면 병의 원인과 증상, 치료법 같은 것은 망할 것도 없고 그 사람의 성격까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진단법에는 복진법이 으뜸이라. 배를 보면 모든 병을 다 알 수 있어요. 뱃속이 비었는지, 꽉 찼는지 막혔는지 오장육부의 상태가 배에 정확하게 나타나는 것이오. 맥은 그 부위가 좁아서 판별하기 어렵지만 배는 면적이 넓잖아요. 복진법의 대가인 일본의 오스까 선생은 마지막에는 맥도 보지 않고 배만 보고 모든 환자를 다 치료했어요. 암이 있는지 없는지 병원에서는 사진을 찍고 조직검사를 해 봐야 알지만 우리는 만져보면 알아요. 말 안해도 만져보면 다 아는 거예요. 병원에서 진단한 것과 내가 만져서 진단한 것하고 병명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내가 진단한 것이 더 정확해요. 병원에서는 사진을 보고 판단하고 나는 실물을 보고 판단합니다. 어떤 것이 더 정학하겠습니까? 사진에는 안 나타나도 실물이 만져지는 것이 많아요. 다른 병도 아니고 암을 고치려면 병원보다 더 정확하게 진단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병원에서는 암이 위장에 있다고 했는데 내가 보니까 대장에 있어요. 이럴 때는 대장에 있는 암을 목표로 치료를 해야 하는 거라. 병원에서 나온 진단대로 치료를 하면 암만 치료해도 낫지를 않아요. 그런데 내가 진단한 대로 치료를 하면 병이 나으니까 내 방법이 더 정확한 게 틀림없지요."  복진법은 옛날에도 있었다. 에 복진법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배를 눌러보면 꼴꼴 하고 물소리가 난다거나 딱딱한 덩어리가 만져진다거나 하는 등 복진법에 대한 설명이 적지 않게 나온다. 그러나 복진법은 예절을 중요시하는 유교 사회의 전통 때문에 곧 잊혀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체가 높은 부인이나 규수를 진맥하려면 직접 손목을 잡을 수가 없으므로 실을 손목에 매어 문 밖으로 내어 의원이 그 실 끝을 잡고 진맥을 했다고 하지 않는가. 남자한테 손목을 잡히기만 해도 정조를 잃은 거나 다름없이 여기던 시대에 어찌 의원이 병을 진단한답시고 부인들이나 규수들의 속살을 내놓게 하여 들여다보고 만질 수 있었겠는가.  완전히 잊혀졌던 복진법을 후대에 되살린 사람은 일본인 의학자 오스까 선생이다. 심선택 선생은 오스까 선생의 책을 보고 복진법을 익히고 또 스스로의 경험과 연구로 오스까 선생이 미처 찾아내지 못한 증상을 찾아내어 복진법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내 스승은 오스까 선생입니다. 그 분을 만난 적은 없지만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았지요. 나는 고방이 완전한 의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래 장중경 선생이 지은 상한론은 182장으로 되어 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상한론은 4백 7장인가 됩니다. 중국 것은 3백 82장인가 되고요. 일본의 상한론 역시 3백 80장이 넘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본래 장중경 선생이 지은 것은 182장뿐인데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를 거쳐 내려오면서 후인들이 해석을 해서 계속 덧붙여서 지금처럼 내용이 많아진 겁니다. 그걸 오스까 선생이 다 떼어내고 본래대로 182장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후세사람들이 덧붙인 복잡한 것은 안 배우고 182장만을 수없이 읽고 연구하여 통달했습니다."  무덤 속에서 시체와 누워서 밤을 지내기도 그 동안 암환자를 치료하면서 겪은 사연이 적지 않다. 의사는 자기가 치료를 맡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자신이 치료하는 환자가 음식을 잘 먹고 힘이 나고 몸이 좋아져서 병이 나으면 하늘에라도 올라가는 것처럼 기쁘지만 환자의 병세가 기울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통증으로 고통을 받게 되면 의사도 환자 못지 않게 괴로운 것이다. 정성을 다해 약을 지어 주고도 혹 환자가 약을 먹고 잘못되지나 않을까 늘 가슴을 졸여야 한다.  "치료하던 환자가 나으면 기분이 제일 좋지요. 그런 보람에 의사 노릇을 그만두지 못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치료하던 환자가 죽는 바람에 곤욕을 당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한 번은 어떤 부인이 말기 암으로 치료를 받다가 죽었는데 그 남편이 깡패두목이었습니다. 남편이 네가 내 아내를 죽였으니 대신 죽어야 한다면서 밤중에 공동묘지로 끌고 가서 구덩이를 크게 파 놓고 부인의 시체 옆에 누우라고 했습니다. 구덩이 속에서 시체와 함께 누워 덜덜 떨면서 밤을 지샜습니다. 그 때는 환자의 증상만 살필 줄 알았지 암을 치료하는 법을 잘 몰라서 실수가 많았습니다." 그는 자궁암, 유방암, 간암, 위암, 폐암, 직장암, 임파선암, 뇌암 등 갖가지 암환자를 치료하여 성공을 거두었지만 식도암만은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가 그의 어머니가 식도암에 걸려 물도 넘길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어머니의 식도암을 치료하면서 암을 치료하는 중요한 원리를 깨닫게 되었다.  "식도암에는 이격탕이라는 약을 쓴다고 책에 나와 있어요. 그런데 이격탕을 식도암 환자한테 써 보니 초기에는 낫는 것 같다가 나중에는 환자가 음식을 먹지 못하고 죽어요. 암 덩어리가 커지면서 음식이 넘어가지 않는 겁니다. 못 먹으니 체력이 쇠약해져서 죽을 수밖에요. 책에 써 놓은 대로 해 봐도 낫지 않으니 책이 틀렸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어머니가 식도암에 걸렸습니다. 밥을 한 숟갈도 못 드시고 물이나 우유도 안 넘어가게 된 겁니다. 못 드시니까 몸이 몹시 쇠약해졌어요. 보약인 십전대보탕에 이격탕을 합하여 써 보았어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그 약을 드시고 식도암이 나았어요. 허(虛)가 보이면 먼저 보(補)하라는 원칙이 있는데 그걸 내가 깨닫지 못했던 겁니다. 그걸 몰라서 환자들을 죽게 한 거지요. 그런 것까지는 책에 적혀 있지 않으니까요.  병을 치료하는 것은 바둑이나 전쟁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공격을 먼저 할 것이냐, 방어부터 한 다음에 공격을 나중에 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합니다. 만약에 적군이 강하고 아군이 약하면 기습공격을 할 것이냐, 아니면 천천히 아군의 힘을 기른 다음에 적을 무찌를 것인가를 신중히 판단해서 치료를 해야 하는 겁니다. 전쟁을 하려면 무엇보다 적군보다 아군이 강해야 합니다. 병과 싸우려면 무엇보다도 체력이 강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암을 치료하려면 먼저 보약을 써서 체력을 키운 다음에 암을 쳐 없애는 약을 써야 하는 겁니다.  나한테 누가 최고의 암치료약이 뭐냐고 물으면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이라고 대답합니다. 암은 체력소모가 많은 질병이고 체력이 쇠약해지면 음식을 잘 먹지 못하고 몸의 면역기능이 떨어져서 좋은 약을 써도 몸에 잘 흡수되지 않고 제대로 그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이럴 때 보약을 쓰면 살이 지고 힘이 나며 체력이 좋아집니다. 십전대보탕은 쇠약한 것을 치료하는데 제일 좋은 보약이지요. 그런 뒤에 치료약을 쓰면 효과가 훨씬 빨리 나타납니다. 어머니의 식도암을 고친 뒤로 식도암 환자를 몇 사람 치...더보기
출처 : Daum 지식
글쓴이 : 쫌하자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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