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얌생이 몬다
도둑이라 하시니, 8.15해방이 미국놈의 강점으로 도둑 공화국이 되고 만 이남 사회의 이야기를 한 가지 하겠습니다.
미국이 이남을 강점하자 우리나라 남부의 중요한 거점에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그때 부산에는 히야리아 부대가 생기고 그 근방에는 양갈보촌도 함께 생겼고(미국 놈 있는 데는 세계 어느 곳이던 꼭 갈보촌을 달고 다니지요. 그리고 넓은 논밭과 초원에는 끝이 안보일 넓은 보급창 야적장도 있지요.) 부산항 부두 바닷가의 넓은 초원이나 논밭도 그들 보급창의 야적장으로 되었습니다.
부둣가 근처에 사는 부산 사람들은 그 초원에 아침 일찍이 염소를 몰고 꼴(풀)을 먹이는 것이 하나의 일과였습니다. 거기에 철조망을 두르고 보급품 야적장이 마련되어 있고 엄청나게 많은 보급품이 그 끝이 안보일 멀리까지 쌓아두고 있는데, 지키는 놈은 병정 하나가 엠원 소총 하나만 어깨에 삐딱하게 걸치고 보급품 상자를 하나 깔고 앉아 졸고 있었지요. 그리고 이놈이 변이 마려우면 철조망 한쪽을 들치고 나와 풀밭에 물건을 내고 아무 데고 깔기지요.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가는데 들친 철조망은 그냥 둔 채 또 상자를 깔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지요.
첫날은 이 염소몰이가 겁도 나고 해서 그냥 염소 꼴만 먹이고 돌아왔는데, 그 이튿날은 간이 좀 커져 그 들쳐진 철조망을 보고 또 조는 미군병사를 보고 하면서 저 안에 들어가면 껌이야 드롭스야 깡통(통조림)이야 많이 있을 것이고, 미국 놈 물건은 모두가 돈이 된다는 사실은 양갈보 촌에서 양놈 물건이 시장으로 흘러나오는데 불티나게 잘 팔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지라 입에 춤이 흐르도록 탐이 나서 훔칠 마음은 났지만 겁이 나서 철조망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한 사나흘이 지나도 지키는 졸병은 물건 지키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상자를 깔고 기대어 아예 코까지 골고 빈 입을 쩝쩝하면서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지라 용기가 안날 수가 없었던 게지요.
그래서 하루는 용기를 내어 졸병이 코를 골고 자고 있는데 철조망을 들치고 들어가 야적상자에 덮어둔 방수 천을 들치고 그 속에 들어가 커다란 꼴망태에 이것저것 없이 잔뜩 채워서 밖으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다음날은 좀 더 용기가 생겨나 좀 더 큰 망태를 가지고 가서 더 많이 가지고 나와 미국 놈 물건을 파는 시장, 돗대기시장에 나가서 톡톡히 재미를 보았습니다.
당시 부산 신창동 일대 공터에 미군 유출 보급품, 그 유출은 주로 양갈보의 몸값으로, 아니면 야적장이나 피엑스에서 훔치거나 한 것을 내다파는 곳으로 되었고 부산사람들은 이를 돗대기시장이라 불렀습니다.
이 돗대기시장은 6.25전쟁 때 비약적으로 미제 물품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발전하다가, 1.4후퇴(미국놈이 이북까지 쳐 올라갔다가 섬멸적 패퇴를 당하고 쫓겨내려 올 때 많은 이북 동포들이 미국 놈이 원자탄 폭격한다는 소리에 미국 놈 따라 피난을 왔는데, 이를 이남에서는 1.4후퇴라고 하지요.) 때 부산까지 피난 온 사람들이 미국제 물품 장사를 해서 굶주림을 해결하면서 시장규모가 더 커졌고 이때부터 그들이 자유시장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정전 후 미제 물품은 물론이고 외국제 물품도 정식무역으로 거래되어 그 소매시장으로 규모도 크게 되어서 국제시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부산 용두공원 자락에 있는 국제시장의 유래는 이와 같습니다.
각설하고, 이 염소몰이 하던 사람은 한두 번 재미를 보던 것이 이제는 이 일을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만큼 생활규모도 커지고 거기에 따라서 욕심도 많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혼자 힘으로는 할 일은 넘어서고 염소몰이 하는 친구들과 의논을 하고 작전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이 보초 졸병을 아예 구어 삶기로 했습니다. 거기에 양갈보를 끼워 넣었습니다. 양갈보가 담요를 가지고 가서 졸병을 꼬시어(꾀어) 한쪽 구석에 데리고 가서 위스키를 나누어 마시면서 놀고 있는 동안 염소몰이 몇 놈이 이제는 리어카를 끌고 가 한 짐 돈 될 것을 골라 가득 싣고 나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요즘 얼마 전 「한나라당」이 하던 ‘차떼기’의 시작이지요.
이들은 이 짓을 그들끼리 은어로 ‘얌생이몬다’라고 했지요. 이 말이 퍼져 한 때 도둑질을 모두 ‘얌생이몬다’로 표현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얌생이’는 경남사투리로 염소를 말합니다.
미국 놈이 들어와서 백설같이 흰 우리 동포들의 마음을 대번에 까마귀 같이 검은 마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일제 때 그 어려운 시절에 마을에는 삽짝(솔가지로 얽어놓은 사립)으로 집 안팍을 표는 해두지만 잠겨 두지는 않을 만큼 도둑이 없었고, 더구나 해방이 되어「건국준비위원회」치안대 시절 석 달은 두둑으로 잡혀오는 일이 남조선 천지에 한 건도 안 생긴 백옥 같은 우리 동포였습니다.
남조선단독정권이 생기자 정부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사바사바’ 세상, 돈 안 주면 되는 일도 안 되고, 돈 주면 안 되는 일도 되는 부패가 체질화되었습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이제는 막 죽이는 세상, 말 안 들으면 ‘골로 가는 세상’, 산골짜기에는 빨갱이라면서 무리죽음을 해, 시체는 잘 묻지도 않고 그대로 버려두어 들짐승의 밥으로 만드는 무서운 세상, 법도 없고 도덕은 아예 말붙이지도 못하는 세상, 그래서 ‘모처’를 들먹이면, 아 이제 ‘죽었구나!’ 했고, 번호판 없는 군용지프, 계급장 없는 군복, 검은 안경이 무소불능의 권력을 상징하는 세상, 정말 소름끼치는 무서운 세상이었지요.
지금도 그 지난날의 세상과는 하는 짓이 좀 세련되기는 해도 ‘등쳐먹고’, ‘간 내먹는’ 세상으로 무섭기는 알고 보면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지요.
백두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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