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의 마이웨이·23]전생‥백투더퓨처 |
【서울=뉴시스】
‘전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전생에 누구였을까?’
내가 전생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때는 중학교 2학년, 낙엽이 지는 가을이었다. 교복을 입은 나는 학교를 마치고 근처 장충단 공원을 느릿하게 산책하고 있었다.
‘파랗게 무성하던 나뭇잎도 때가 되니 가는구나.’
이렇게 나름대로 우수에 젖어 늦가을의 정취를 취해 있을 무렵, 어디선가 “꺄악!”하는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소리가 파란 하늘을 찢었다. 나는 여자의 외마디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선배가 피투성이가 된 채 뒹굴고 있는 게 아닌가. 여학생은 곁에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떨고 있었다. 고교 선배가 불량배들에게 희롱당하는 여학생 옆을 우연히 지나가다가 실랑이가 붙어 누군가 한 명이 칼로 찌르고 도망간 사건이었다. 안타깝게도 선배는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나는 살인사건 증언자로 경찰 조사를 받아야했다. 알고 보니 그 선배는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착실하게 공부해온 의협심 강한 모범생이었다. 선배의 어머니는 처절하게 오열했다.
“착한 내 아들을 누가 데려갔습니까! 전생에 무슨 죄를 져서 우리 아들이 이런 업보를 받아야합니까!”
얼굴도 모르는 여학생을 보호하다가 칼을 맞고 착한 사람이 왜 불행하게 죽어야 하는가. 현생의 논리에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순간 초등학교 친구 양수길 영가와 나눈 전생의 대화 이후로 잊고 있었던 전생이란 화두가 되살아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생이란 화두는 진전이 없었다. 사춘기 소년에겐 넘기 힘든 벽이었을까. 그러던 중 중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 우연히 기억을 과거로 퇴행시키는 법을 터득하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학생이던 나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왠지 고향인 전주를 가고 싶어서 전주행 특급 열차인 태극호를 집어탔다. 옆자리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름다운 중년부인이 앉았다. 기차가 얼마나 갔을까. 차츰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인도 몇 번이나 차길진이라고 쓰인 교복 명찰을 훔쳐보았지만 서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기차가 대전 역에 정차하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쳤다.
“혹시 차일혁….”
“혹시 제 돌잔치 때 오셨나요?”
화들짝 놀란 것은 부인이었다.
“그걸 어떻게 기억하죠?”
나도 알 수 없었다. 순간 하얀 섬광이 터지듯 눈앞이 밝아졌다.
마을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산더미같이 음식을 쌓은 돌상 뒤쪽에 어린 내가 색동옷을 입고 앙증맞게 앉아있었다. 가족들은 연신 축하객들의 덕담을 받느라 분주했고 가무단의 축하 공연으로 흥청댔다. 당시 아버지는 S공장 관리책임자로 있었는데 유명한 역술인 하나가 내 돌잔치는 무조건 크게 해줘야한다고 말해 아버지는 마치 마을 잔치처럼 성대하게 돌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가무단의 일원 중 단연 돋보이는 ‘소옥’이라는 기생이 있었다. 그 기생이 바로 기차를 같이 타고 옆에 앉아 있는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훗날 자산가와 결혼했지만 6·25 전쟁 때 남편이 실종되었고, 남편의 유산으로 고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후원 사업을 하며 전주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던 부인은 내가 ‘소옥’이라는 기명까지 또렷이 기억하자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기차 안에서 ‘순간 기억 퇴행술’을 터득한 나는 기억을 뒤로 되돌리기 시작했다. 영화 필름이 되감기듯 중학생에서 초등학생, 코흘리개로 수많은 장면들이 이어지며 점점 나는 어려졌다. 4세 때 겪은 6·25 생각도 나고 친구와 재미있게 놀던 생각 따위도 끝 간 데 없이 떠오르더니 갑자기 어떤 노파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느려졌다. 왠지 나는 그녀가 할머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잔치를 벌이고 있는 장면도 떠올랐다. 할머니의 환갑날 한 장면으로 필자가 태어난 지 8개월 되던 날의 행사였다.
새벽 3시30분께, 두 분이 어머니의 분만을 유도하고 있었다. 머리가 자궁을 통과하면서 머리가 깨지듯 엄청난 고통이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출생은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큰 고통이었다. 고통 속에 와서 고통 받고 살다가 고통 속에서 죽은 인간의 존재. 그 아픔이 선연히 떠올랐던 것이다. 뭔가 머리를 울리는 큰 소리도 느껴졌다. 그뿐 아니라 얼굴이 희고 둥근 여자가 고통과 함께 이지러져 길쭉해진 태아의 머리를 열심히 쓰다듬고 있었다.
자신이 태어날 때의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어쩌면 상상속의 일을 그럴듯하게 엮은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알맞은 노릇 아닌가. 나조차도 긴가민가해서 사실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믿기 힘들지만 사실임을 입증해주는 ‘증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분만을 도와준 두 분의 인상착의를 자세히 어머니에게 말했더니 ‘어떻게 알았냐’며 깜짝 놀라는 게 아닌가. 두 분은 젊었을 때 나의 친할머니와 이모였는데 나는 그분들을 직접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확인으로 확실해진 것이다.
더불어 그날 하늘에서 천지가 쪼개지는 듯한 뇌성벽력이 울렸던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전생과 현생의 분기점을 확실하게 목격한 것이라고나 할까. 나는 기억을 태어난 순간까지 되돌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후암미래연구소 대표 www.hoo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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