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위 규명부터 시효 인정
유족들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
‘
문경학살’ 사건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8일 한국전쟁 직전 국군이 공비를 토벌한다며 민간인들을 사살한 문경학살 사건 피해자 유족 채아무개(73)씨 등 4명이 국가를 상대로 10억3천여만원을 배상해달라며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진실을 은폐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조차 게을리 한 국가가 이제 와서 문경학살 사건의 유족인 원고들이 미리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며 시효 완성을 이유로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문경학살 사건의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는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가 진실규명 결정을 한 때부터 시작된다고 못박았다. 국가의 불법 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은 발생한 날로부터 5년, 손해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사라진다. 국가는 문경학살 사건이 1949년 12월 발생했고, 유족들이 이 사건과 관련된 헌법소원을 낸 2000년 3월 손해를 알게 됐다고 봐 소멸시효가 끝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민간인 학살행위는 국가에 의해 진상이 규명되기 전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건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운데, 과거사위의 결정 전까지는 국가가 진상을 규명한 적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위난의 시기에 국가권력의 묵인 아래 자행된 기본권 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해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 과거사위의 진실 규명 결정이 있던 2007년 6월까지는 객관적으로 원고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밝혔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