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봐도, 모처럼 얼굴 보는 동창들 모임에서도, 심지어 가족 모임에서도 대화의 화두는 경제위기와 불황의 여파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누가 시비라도 걸어주면 그동안 쌓아두었던 짜증을 시원스레 폭발해버리고 싶은 욕망이 불쑥불쑥 생겨날 지경이다. 꾹 참으라고? 아니올시다. 전문가는 분노에도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자고 오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다 늦은 밤에 친정으로 데리러 오라는 아내 때문에 평소와 달리 몸과 마음이 흥분 상태인 그 앞에는 꽉 막힌 자동차가 꼬리를 물고 있다. 어느새 아내가 못 박은 도착 시간 15분 전. 도저히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없다. ‘한남대교는 글렀고, 반포대교를 타야지’라고 마음먹는 순간, ‘급차선 변경 금지’라는 도로교통안전법은 안중에도 없다. 힐끗 백미러를 보니 전조등이 멀리서 반짝일 뿐, 틀림없이 안전하고 적절한 타이밍이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고 액셀러레이터에 힘을 주어 사거리를 거의 빠져나올 무렵, 아까 저 멀리 보이던 전조등이 무섭게 다가오는 듯싶더니 벌써 코앞이다. 전조등은 그의 차 오른쪽 펜더를 들이받고 만다.
그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내는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대신 입을 벌린 보닛 사이로 부서진 라디에이터가 ‘쐐’ 하고 비명을 지르고, 동시에 섬뜩한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그의 뚜껑 열린 머리에서는 분노의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바, 전조등의 주인은 쏜살같이 내려오면서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비록 자신의 잘못을 알아도 소용이 없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뻔하다. 이미 분노 반응(Anger Response)이 시작된 것이다.
분노 반응 온몸의 자율신경 하나하나가 전투를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분노 반응은 비상 시스템이므로 말 그대로 찰나에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이성은 마비되어 오로지 공격하는 것만 생각한다. 동공은 확대되어 상대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대뇌에 전달한다. 호흡과 심장박동은 빨라져서 곧 싸움에 사용될 근육에 다량의 산소와 혈액을 공급할 준비를 한다. 주먹과 장딴지 근육에는 힘이 들어가 때론 한계치가 낮은 사람은 오히려 다리가 풀리기도 한다.
이런 자율신경계의 급격한 흥분은 당신의 몸에 적잖은 악영향을 준다. 혹시 심장이나 대뇌 혈관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라면 급작스러운 육체의 흥분에 소위 쇼크사 할 위험도 있다. 만약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우리 몸의 방어전선은 바닥을 보이고 말 것이다. 체력 고갈은 물론 생명 유지에 필요한 영양소가 파괴되고 결국 멀쩡하고 건강한 장기라도 손상을 입는다. 급성이든 아니면 만성이든 분노는 우리를 파괴하는 암살자인 셈이다.
차라리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제가 운전이 서툴고 지금 너무 바쁜 일이 있어서요”라고 하면 자존심은 구기지만 생명 연장에는 도움이 된다. 섀도 복싱이 쉽게 지치듯 상대의 분노도 쉽게 가라앉을 것이다. 물론 당신이 분노 조절(Anger Management)을 모른다면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겠지만 말이다.
분노 조절 반복되거나 쉽게 분노를 느끼는 사람에게는 조절이 필요하다. 분노 조절은 일종의 정신 치료다. 전문 클리닉을 찾는다면 정신과 전문의는 우선 적절하지 않은 당신의 분노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할 것이다(사실 일시적이고 심각하지 않은 적절한 분노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얕잡아보지 못하게 하는 아주 좋은 감정이기도 하다).
그런 과정에서 당신의 주치의는 그런 부적절한 분노가 충동성이나 공격성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른 스트레스나 갈등의 상태로, 평소에 별것도 아닌 일에 화가 폭발하는 경향이 있으니 분노의 원인이 되는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치료하자고 권유할 수도 있다. 이들 증상은 평소 잘 작동하던 당신의 분노 통제기능을 망가뜨려 조금만 건드려도 화를 내는 괴팍한 인간을 만들어낸다.
만약 충동성이나 공격성이 문제가 된다면 주치의는 그 고약한 성질을 폭발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앞서 교통사고를 낸 사람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건드리면 자동적으로 이성을 잃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경우라면 주치의는 자동적으로 생각하는 패턴을 바꾸어주는 인지 치료(Cognitive Therapy)를 시작하자고 할 것이다.
몸과 마음을 이완시킬 수 있는 이완 기법(Relaxation Technique)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분노에도 도움이 되고 평소 긴장을 늦춰 강력하고 빠른 분노의 전투준비 태세를 약화시키고 늦출 수 있다. 스트레스를 다루는 대처 기술(Coping Technique)과 화내지 않고 편안한 느낌으로 자신의 의사를 주장할 수 있도록 자기주장 훈련(Assertive Training)이라는 것도 가르쳐줄 것이다.
이런 일련의 치료를 받는다고 단 한번에 ‘분노 덩어리’인 당신이 순한 양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몇 번의 치료가 진행되면 점차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게 되어 화를 안 내는 날이 더 많아지기 시작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두 달이 걸릴 수도 있고, 몇 년이 걸려 분석 치료를 받아야 하는 심각한 경우도 있다. 때론 분노 조절을 위한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도 있다(약 먹는 것이 더 걱정이라고? 분노는 약물보다 더 위험한 암살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잘못을 해놓고도 화산 같은 분노로 교통사고 합의를 보는 데 고생깨나 했던 그는 이렇게 살다가는 인생이 고달프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과를 찾았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기인하는 자동차 사고를 충동성의 원인으로 진단받고, 인지 치료와 이완 요법 훈련을 받았다. 약간은 지루했지만, 일련의 치료 과정이 지속되자 평소보다 화도 덜 나고 참을성도 늘었다. 일주일이면 한두 번은 필수였던 다른 운전자와의 싸움이 현저하게 줄었다. 때로는 손해 보는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운전대를 잡은 이래로 이렇게 편안해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일상에서의 경험 또한 매우 긍정적이라는 결론을 내린 담당 의사는 치료의 종결을 선언했다. “이제 더 이상 클리닉을 찾을 필요가 없겠는데요. 당신은 분노에서 안전하니까요.”
분노란 무엇인가
분노는 감정이다. 자기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반대하거나, 무시당했을 때 경험한다. 분노는 아주 가벼운 짜증부터 격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분노와 함께하는 적대적인 행동을 공격성이라고 한다.
분노가 미치는 영향은 분노가 많은 사람이 50대 전에 사망할 확률은 그렇지 않은 경우의 4~7배라고 한다. 스트레스 반응과 마찬가지로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심장병이나 당뇨병 등 온갖 질병의 유발과 악화에 한몫한다. 최근 연구에서는 분노가 면역세포를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져 암 발병과의 관계를 연구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분노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분노는 사람들에게 ‘내가 화가 났으니 조심하라’는 일종의 경고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나를 보호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얼굴 표정이나 불끈 쥔 주먹 등을 상상해보라!
분노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나? 예전에는 분노가 생기면 샌드백을 두드려 패서라도 풀라고 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방법이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분노 역시 스트레스처럼 관리가 필요하다. 관리란 적절히 빼고 적절히 참는 것을 뜻한다. 그 방법은 사람마다, 경우마다 다를 것이다. 너무 복잡하다.
미국 듀크 대학의 레드포드 윌리엄 교수는 1)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중요성) 2)정당한 분노인가?(정당성) 3) 변경이 가능한가?(변경) 4) 가치가 있는가?(가치) 라는 질문으로 분노를 조절하자고 조언한다.
① 내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끝까지 가야겠지만 사소한 일이라면 잊어버리라는 것이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② 내가 화가 난 것이 적절한가를 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화를 낼까, 내가 지나친 것은 아닐까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이유가 있어 지나치게 분노하고 있다면 가라앉혀보자는 것이다. 다른 전략을 찾는 것이다. ③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화를 내서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느냐’고 자문해본다. 그럴 수 없다면 참을 수밖에. ④ 정말 중요한 일이고, 당연히 이 정도로 화날 수밖에 없고, 게다가 화를 내서 바꿀 수 있다면 이 일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평가해본다. 4가지 중 하나라도 “아니요”라고 대답하면 화를 가라앉히고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적절히 화를 내는 법 분노의 관리뿐만 아니라 적절히 화를 내는 법도 익혀두는 것이 좋다. 보통 자기주장 훈련(Assertive Training)이라고 하는데 3가지 단계가 있다.
① 내가 싫어하는 것 혹은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이가 숙제를 게을리 해서 화가 났다면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숙제를 하지 않은 거니? 어제도 숙제를 늦게 해서 고생했잖아. 지금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단, 이때 감정은 배제하라. 감정에 휩싸이면 사람들은 공격을 당했다고 느낀다.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자기주장 훈련의 핵심이다.
② 그러고 나서 내 감정 상태를 밝힌다. “지난번에는 봐줬지만, 지금 내가 몹시 화가 나 있거든!” 이 같은 언어적 정보는 상대가 당신에게 겁을 내고 말을 잘 듣게 할 수 있다. 분노의 순기능 중 하나다.
③ 그 다음에는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대처 방안을 제시해야 화가 나는 일을 반복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까 오늘은 오후에 TV 보는 시간을 줄이고, 숙제의 순서를 정해서 마무리하자. 알아들었지?”
공격성 척도 테스트
당신의 대인관계에서의 행동을 알아보려는 것이다. 각 문장을 자세히 읽고 자신의 평소 행동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생각되는 번호에 표시한다.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_1점, 약간 그렇다_2점, 꽤 그렇다_3점, 확실히 그렇다_4점으로 각 문항의 점수를 합산한다(역방향 채점 문항 : 1, 4, 6, 13, 17, 21).
54~58점 공격적 성향이 약간 있음. 59~61점 공격적 성향이 상당히 있음. 62점 이상 공격적 성향이 매우 높음.
1 나는 누가 나를 때린다고 할지라도 좀처럼 맞서서 같이 때리지 않는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2 나는 때때로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그의 험담을 늘어놓는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3 나는 때때로 다른 사람을 해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4 나는 아무리 화가 나도 결코 물건을 던지지 않는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5 상대방과 다른 의견이 있다면 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나의 입장을 말한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6 나는 무슨 일이 있던지 다른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7 사람들이 나에게 동의하지 않을 때는 논쟁할 수밖에 없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8 누가 먼저 나를 때린다면 나도 때리겠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9 계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나에게 한 대 얻어맞기를 자청하는 셈이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10 사람들이 나에게 호통을 칠 때 나도 맞서서 호통을 친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11 나는 매우 흥분했을 때 누군가를 때릴 수 있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12 나는 때때로 시비조로 행동한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13 누가 괘씸해서 혼내주어야 할 때일지라도 차마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없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14 나는 누구하고나 잘 싸운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15 나는 거짓 협박을 자주 한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16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좀 무례한 행동을 한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17 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나의 좋지 않은 견해를 보통 내색하지 않는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18 나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써야 한다면 쓰겠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19 나는 논쟁할 때 언성을 높이는 경향이 있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20 나는 나를 궁지에 빠지게 한 사람을 알면 그 사람과 싸운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21 나는 어떤 일에 반박해 논쟁하기보다는 차라리 상대편 의견에 따른다. ① 전혀 그렇지 않다 ② 약간 그렇다 ③ 꽤 그렇다 ④ 확실히 그렇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김진세(정신과 전문의, 고려제일정신과 원장)
■사진 / 이주석, 경향신문 포토뱅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