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고서화(古書畵)

[스크랩] 금곡원(金谷園)

감효전(甘曉典) 2012. 1. 12. 00:10

※ 청대(淸代) 화가 예전(倪田)의 <금곡명주도(金谷名姝圖)>

 

當年歌舞時  不說草離離
今日歌舞盡  滿園秋露垂
(당년가무시 불설초리리
 금일가무진 만원추로수)


그 옛날 춤추고 노래하며 놀던 곳
잡초만 무성해지리라 말하지 않았지
지금 노래와 춤 간 곳 없고
정원 가득 가을 서리만 내리네


☞ 조송(曹松), <금곡원(金谷園)>

※ 離離: 구름같은 것이 길게 뻗은 모양. 초목이 무성한 모양

 

※ 북송(北宋) 때의 서화가 왕선(王詵)의 <금곡원도 수권(金谷園圖 手卷)

 

※ 金谷園: 서진(西晉) 때의 관리이자 부호(富豪)인 석숭(石崇)이 애첩 녹주(綠珠)와 함께 풍류와 쾌락을 즐겼던 별장. 하남(河南)성 낙양(洛陽) 서쪽에 있었다. 그는 이곳에 당대의 관리와 문인들을 초대해 주연을 베풀며 위세를 과시했다.


그가 주연에서 시를 짓지 못하는 사람에게 벌로 술 서 말을 마시게 했다는 금곡주수(金谷酒數)의 고사는 유명하다. 나중에 녹주를 달라는 정적(政敵) 손수(孫秀)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앙심을 품은 그의 모함을 받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했다.


석숭이 얼마나 사치스런 생활을 했는지 엿볼 수 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유실(劉實)이라는 사람이 석숭의 집을 찾았다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려한 비단 장막 속에 침대가 놓여 있고 비첩들이 향낭(香囊)을 들고 있었다.


유실은 자신이 규방에 잘못 들어간 것으로 알고 석숭에게 '실수'를 사과했다. 석숭은 그곳이 화장실이라며 가볍게 받아넘겼다. 유실이 다시 들어가 한동안 앉아 있었으나 결국 용변을 보지 못하고 나왔다 한다. ≪배자어림(裴子語林)≫이라는 책에 나오는 얘기다.

 

※ 명대(明代) 화가 십주(十洲) 구영(仇英)의 <금곡원도(金谷園圖)>

 

 

 

출처 : 청경우독(晴耕雨讀)
글쓴이 : 경화수월鏡花水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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