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보도연맹,형무소재소자 학살사건자료

이승만 1950. 7월부터 총 4차례에 걸쳐 형무소에 수감중이던 정치범 3만여명포함130만명 대학살

감효전(甘曉典) 2019. 2. 16. 11:24

부산 지구 CIC와 부산 지구 헌병대, 경찰은 1950년 7월 초 국민보도연맹원에 대한 예비 검속에 들어갔다. 체포된 국민보도연맹원들은 지역 경찰서 유치장이나 경찰서 인근의 임시 구금 시설에 감금되었고 일부는 부산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국민보도연맹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살해되기 시작하였다. 재판 등 법적 절차도 없이 야산이나 해안으로 끌려가 살해되었다. 아무런 범죄도 저지르지 않은 민간인을 국민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것이다. 국민보도연맹 가입자 중 상당수가 좌익 사상과는 무관한 민간인이었다.

 

부산 지역에서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신평동 동매산, 금정구 선동 동래 베네스트 골프장, 동래구 반송동 운봉 마을, 금정구 오륜동 회동 수원지, 해운대구 청사포, 오륙도 인근 해상, 서구 암남동 혈청소 인근 해상 등지에서 학살이 이뤄졌고 영도구 동삼동 미니 공원과 중구 영주동 부산 터널 위 야산에는 수백구의 시신이 암매장되었다.

 

비슷한 시기 부산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재소자도 집단 살해되었다. 당시 부산형무소는 대구, 마산, 진주 등 다른 형무소 재소자들까지 이감되어 매우 혼란스런 상황이었다. 목숨을 잃은 재소자는 6·25 전쟁 발발 이전에 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재소자와 전쟁 발발 직후 예비 검속되어 구금된 민간인, 다른 지역 형무소에서 이감된 재소자 등이었다. 군경은 재소자를 끌어내 트럭에 실은 뒤 인적이 드문 야산이나 해안으로 데려가 총살하거나 수장하였다.

 

부산형무소 집단 학살과 관련해 당시 국군 3사단 군사 고문단 소속 롤링스 에머리치(Rollings S.Emmerich)는 「1950년 6·25 전쟁 초기의 역사」라는 제목의 비망록에서 1950년 7월 1일 23연대장 김종원이 재소자 3,500명을 한꺼번에 집단 살해하려는 것을 저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 미군은 인민군이 낙동강에 이르면 부산형무소 문을 열고 기관총으로 재소자를 쏘아 죽여도 좋다는 말을 남겼고 결국 대학살이 벌어졌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옮긴 글/ 장기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