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聞, 나는 이와같이 들었다.
나는 姓이 甘家라 어릴때부터 특이한 姓氏때문에 단감,감초,땡감,떨감,홍시등으로 불리며
놀림을 참 많이 받았는데 할아버지도 역시 그랬던 모양이다.
클 때 동네 어른들이 신동이었던 일곱살의 어린 할아버지에게 귀엽다고 장난치며
" 영생아, 영생아, 너거 甘氏는 순 쌍놈 백정 姓이재? 맞재?라고 웃고 놀리자
" 예, 저희집 어른들이 돼지를 잡을 때 아재들은 돼지 뒷다리를 하나씩 붙잡고 있었지요?."라고
딱 받아쳤다고 한다.
천한 백정도 급이 다 있는데 소를 잡는 백정보다 돼지를 잡는 백정이 더 천한 취급을 받았고
또 그 돼지를 잡는 백정보다 더 천한 취급을 받는 이가 바로 돼지를 잡을 때 돼지가 버둥거리지 못하게
네 다리를 꽉 눌러 잡고 있는 사람들인데 일곱살짜리 어린 아이에게 괜히 장난 한번 잘못쳤다가
졸지에 돼지잡는 백정보다 더 천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어른들이 말 한 번 잘못했다가 어린 아이에게 한 방 먹고 찔끔 놀라 두 번 다시는 감씨라는 성씨로 놀리거나
아이라고하여 함부로 하지 않았다고하며 그 비범함에 모두 혀를 내두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또 할아버지는 키가 182cm로 말을 아주 잘 타셨다고 하며 할머니가 시집왔을 때 14살 어린 할아버지가
조랑말을 타고 다녔는데 그 위에서도 책을 읽으셨다하며 다리가 길어 다리를 덜렁거리며 다녔는데
그 모습이 보기가 참 좋았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늘 어른들과 함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셨으며 새벽이면 낭랑하게 책을 읽으셨는데
그 글 읽는 소리를 밖에서 듣고 무학이셨던 증조할머니가 천자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도 안틀리고
다 외우시고 일본어 가다가나 히라가나.그리고 영어 알파벳도 외우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좀처럼 화를 잘 내지 않으셨는데 어쩌다 참기 힘들 정도로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참을 忍자를 細筆로 100번을 쓰며 그 분노를 삭혔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실제로 내가 어릴 때 한번 따라 해보았고 화가 많이 날 때 참을 忍자를 100번 쓰는 것을
머릿속으로 연상하는 버릇이 그 때부터 생겼다.
이 이야기는 할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어른들이 웃으면서 늘 하시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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