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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정일의 여인들

감효전(甘曉典) 2012. 1. 2. 19:05
'고영희' 프로필 
이름 : 고영희 (고영자)
출생 : 1953년 6월 16일
사망 : 2004년 8월 13일
직업 : 예술기관단체인
가족 : 남편 정치인 김정일, 아들 정치인 김정철 .김정운. 김여정
경력 : 前 만수대 예술단원
 
 

김정일과 관계를 맺은 대표적인 여성들과 90년대 중반까지의 여성편력 사례를 짚어보자.

 

① 고영희(본명 고정자)
고영희(1990년 북한유도협회 초대 회장 고태문-북송교포-의 딸)는 알려진 바에 따르면 네 번째 처다. 고영희는 북한 상층부에서 김정일의 공식 부인으로 인정받으며 김정일과 같이 살고 있는 여자다. 코가 커서 '방치코'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고영희는 김정일과 사이에 김정철(21), 김정운(19), 김일순(13) 등 2남 1녀를 낳았다. 이들은 김정일의 장자 김정남의 이복동생들이다. 고영희는 강원도 원산, 황해도 신천, 평안북도 창성, 양강 도 삼지연, 함경남도 함흥 등지에 관저를 갖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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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성혜림의 조카로 지난 97년 2월 피살된 이한영은 고영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1975년부터 고영희라는 무용수가 언제나 김정일의 파트너를 맡게 됐다. 그녀는 1953년 일본에서 태어나 60년대 전반 가족 전원이 북한으로 귀국한 재일 조선인으로 72년에 만수대 예술단에 무용수로 입단했다. 73년과 74년 만수대 예술단의 일본공연에서 각광을 받았고, ‘눈이 내리네’라는 15분 정도의 단편영화에 주연을 맡은 적도 있었다. 1977년 들어 고영희는 연회에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된다. 김정일에게서 철봉리에 있는 별장을 받아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그녀는 79년 후반인가 80년에 창광산 관저에 들어가 그 곳의 ‘안주인’이 됐다.”

 

이한영의 증언도 구체적이지만 만수대 예술단원이었던 신영희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고영희는 만수대에서도 유명한 무용 배우였고 김정일의 마음에 들었다. 김정일은 이따금 연습실까지 찾아와서 그녀의 연습을 지켜볼 정도로 열을 올렸다고 한다. 고영희는 이목구비가 반듯한 얼굴로 키도 크고 스타일이 좋은 미인이었다. 춤솜씨도 뛰어나고 무대에서의 인상도 화려하여 주변에서 높은 평판을 받고 있었는데, 김정일도 그런 점에 주목한 듯하다. 그러던 중에 고영희는 점점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됐고, 뒤에 김정일과 동거하고 있다거나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 나돌게 된다.”

고영희가 임신했기 때문에 김정일은 그녀를 창광산 관저에 살게 했고, 1981년 두 사람 사이에서 김정철이 태어났다. 이한영에 의하면 김정철은 베른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② 홍일천
김정일은 정부호위총국 지도원으로 있을 당시인 1966년 홍일천과 결혼해 딸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업신여겼으며 다른 여성들과 바람을 피우거나 손찌검까지 예사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결혼은 결국 파경에 이르러 이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강명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68년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내각 사무국 지도원 한 사람을 지명해 주었다. 귀여운 여성이었다. 약혼 단계까지는 진전된 것 같은데 결혼까지는 못 간 듯하다. 현재 그녀는 어느 초대소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강명도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여인은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해 볼 때 김일성 종합대학 러시아문학부를 졸업한 혁명 유자녀인 홍일천이다. 그녀는 김정일과 연애 끝에 1966년 가을(67년이라는 설도 있음)에 결혼, 68년에는 혜경이라는 딸을 낳았지만 3년 후(일설에는 5년 후) 이혼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홍일천은 그 후 1980년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돼 정무원 보통교육부 부부장(문교부 차관)을 거쳐 지금은 김형직 사범대학 학장이 돼 있다. 때문에 얼굴 사진을 볼 수 있다. 지적으로 생긴 미인이지만 그녀가 김정일의 첫 부인이라는 결정적 증언은 없다.

 

③ 성혜림
다음으로 등장하는 여인이 망명소동을 일으킨 성혜림이다. 성혜림은 영화배우로서 김정일이 조직지도 및 문화예술을 담당하고 있을 당시 알게된 인물이다. 성혜림은 1955년 평양연극영화대학에 입학했으며 56년에 이평의 딸을 낳은 후 정식으로 결혼했다. 그리고 재학중이던 59년 ‘경계선의 마을에서’라는 영화에 출연해 배우로 데뷔했다. 당시 김정일은 남산고급중학교 친구(월북작가로 문학예술총동맹 위원장이었던 이기영의 아들) 집에 자주 놀러다녔는데, 그 친구의 형수가 바로 성혜림이었다.

 

이한영에 의하면 “숙모는 이평과의 사랑 없는 결혼에 실망하고 있었고 68년경부터는 김정일과 비밀 데이트를 즐기게 됐다”고 한다. 성혜림은 68년 ‘어느 자위단원의 운명’을 마지막으로 영화계를 떠나 69년부터 김정일과 함께 살게 된다. 그 당시 성혜림은 33살, 김정일은 5살 연하인 28살이었다. 김정일이 중앙당을 통해 이평을 강제로 이혼시켰다고도 하지만 성혜림이 임신하자 200평 정도의 ‘15호 관저’를 세워서 성혜림을 본처로 대우했다. 성혜림과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것은 그녀에게 결혼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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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혜란과 맨밑 이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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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김정철)

1971년 5월10일 성혜림은 고관 전용인 봉화진료소에서 아들 김정남(김정일의 장남)을 출산했다. 김일성이 김정남의 존재를 안 것은 4년 뒤의 일로, 그 때까지 김정일의 아들은 극비로 취급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성혜림은 마음고생이 많아 73년에는 모스크바 크렘린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다. 74년 봄 평양에 돌아온 성혜림은 다시 15호 관저에서 생활을 시작했으나 모스크바에도 아파트를 갖고 평양과 모스크바를 오가며 살았다. 그리고 1996년 망명을 시도한 후 현재까지 그녀의 거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한영에 따르면 장남인 김정남은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④ 김영숙
사랑도 많이 하는 김정일 앞에 세 번째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가 바로 혁명가 유자녀이면서 한국에서는 본처로 알려진 김영숙(56세·당선전선동부 타자수 출신)이다. 남한 사회에서 김정일의 공식 부인으로 알려진 김영숙은 현재 두 딸과 함께 북한 호위사령부 초대소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최근 성혜랑(성혜림의 언니)씨의 증언으로 현재 김정일과 같이 살고 있는 처는 고영희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한영의 증언을 들어보자.

 

“김정일은 자신의 타이피스트가 마음에 들어 관계를 맺었다. 김정일이 첫눈에 반한 여성은 김영숙이라는, 1973년 당시 17살 처녀였다. (생략) 숙모가 충격을 받은 것은 김영숙이 여자아이를 낳아 김일성이 대단히 기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김정일은 74년에 김영숙에게서 장녀인 설송을 낳았다.” 김영숙은 혁명가 집안에서 태어나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한 후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타이피스트로 일하던 시기에 김철만 장군의 소개로 김정일을 만났다고 한다. 김영숙에게는 설송 외에도 1남1녀가 더 있다고 전해진다.

 

⑤ 김혜숙(김애숙)
그러나 1955년 생인 ‘김혜숙(김애숙)’이라는 여성이 본처라는 정보도 있다. 김혜숙은 함경북도 회령군 출신의 미인으로 부친은 청진사범대학 학장이라고 한다. 두 사람이 결혼한 것은 1972년(73년설도 있다)이라고 하며, 자녀도 있다고 한다. 이한영의 증언을 신뢰한다면 김영숙과 김혜숙의 생년월일이 거의 일치하며, 같은 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의 제빈 기자는 ‘내가 본 김왕조’라는 책에서 “(1988년에) 소련의 예술가가 출연한 어떤 연회에 김정일은 부인과 딸을 데리고 나타나 일등석의 리더에게 소개했다. 김정일과 처자식은 6시간이나 연회에 참석했으며, 11∼13세로 보이는 딸은 일제 비디오 카메라로 계속 녹화를 했다.”고 쓰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딸이 태어난 연도는 1976년 또는 77년이며 김영숙의 차녀라고 생각된다.

 

⑥ 손희림
김정일은 80년대 초부터 현재 러시아주재 대사인 손성필의 여동생 손희림(1950년생 당시 32세)을 농락, 딸 두 명을 낳았다. 그러나 손희림은 1991년 김정일에게 버림받은 충격으로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걸려 현재 오빠 손성필의 도움을 받아 딸들과 함께 모스크바에 살면서 치료를 받고 있다.

 

⑦ 홍영희
북한에서 이름난 여배우 홍영희는 김정일의 측근 간부가 김정일이 좋아하는 타입의 용모를 보고 천거한 케이스. 홍영희는 김정일의 애첩이 됨으로써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의 주인공을 맡아 신인에서 일약 인민배우의 칭송을 듣는다. 그녀는 김정일의 연회 때마다 가까이서 시중들다가 지난 86년 김정일이 정해준 사람과 결혼한 것으로 전해진다.

 

⑧ 정혜순
정혜순은 지난 91년 5월 평양 중앙TV방송에서 방영한 극영화 '종달새'의 주인공 향미역을 맡았던 신인 여배우였다. 김정일은 정혜순이 생모인 김정숙과 너무 닮았다하여 애첩으로 발탁, 평양 교외의 대성산에 있는 별장에 기거시키면서 특별번호를 부착시킨 고급벤츠 승용차를 하사해 초호화판 생활을 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⑨ 기타
김정일은 김일성종합대학 동급생이던 정무원 외교부직원 이형연(현 튀니지 대사 69세)의 처 이상진과 불륜의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외국 여성도 선호해 미모의 러시아 여가수와 악단을 초청, 엽색행각을 벌였으며 측근 간부들과 함께 러시아 여성 보컬그룹을 초청 난교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 아니라 지난 80년대 귀순한 북한외교관출신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에게 농락 당한 여성들 중에는 버림을 받아 자살한 사람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70년대 말 평양예술단 소속의 독창가수 한 명이 유서를 남기고 대동강에 투신자살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⑩ 부인 4, 자식 8(+2)
이상의 정보를 정리하면, 제1부인 홍일천에게서 1녀(김혜경), 제2부인 성혜림과의 사이에 1남(김정남), 제3부인 김영숙과의 사이에 1남2녀(김설송과 남동생 및 여동생), 제4부인 고영희와의 사이에 2남1녀(김정철, 김정운, 김일순)라는 가족 구성이 이뤄진다. 그리고 손희림과의 사이에 2녀가 추가된다.

 

⑪ 여성 취향은 귀엽고 둥근 얼굴
김정일의 여성 취향은 귀엽고 둥근 얼굴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수대 예술단 무용수였던 신영희는 김정일의 여성타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김정일 옆에는 주로 고영희가 앉았다. 그녀가 고영희라는 것을 몰랐을 때엔 나는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파티장에 들어올 때부터 김정일과 함께였고 김정일이 직접 코트까지 벗겨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후한 대우를 받는 사람이 도대체 누굴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적당히 살집 있는 몸매에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중략) 그러나 고영희가 파티를 할 때마다 오는 것은 아니었다. 파티에 참석할 때는 김정일과 춤을 추기도했다. 고영희가 없을 때엔 김옥이라는 삼지연조 단원이 김정일 옆에 앉았다. 삼지연조는 전자피아노 한 명과 기타 두 명으로 구성된 여성 기악조였다. 김옥은 작은 체격에 얼굴이 둥글고 귀여웠다. 김정일은 대개 둥근 얼굴의 미인형을 좋아한다.” 강명도 또한 “김정일이 좋아하는 타입은 한국에서 압도적 인기를 얻고 있는 여배우 최진실처럼 ‘아주 귀여운 느낌의 미인’이다”고 증언하고 있다.

 

자료출처 : http://www.kimjungilanti.com/

출처 : Intelligence Center[Night Watch]
글쓴이 : CIA bear 허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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