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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와 장준하의 굳은 밀약

감효전(甘曉典) 2012. 10. 13. 11:45

조명]“김재규-장준하 굳은 밀약 있었다”

2005 11/08뉴스메이커 648호
서중석 교수 “김재규 거사 없었으면 유신 더 지속됐을 것” 주장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하지 않았따면?

김 전 부장이 ‘의사(義士) 또는 혁명가인가’ ‘상관을 살해한 패륜아인가’ 라는 논란과 더불어 10·26 사건 재평가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현대사를 전공한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가 이 질문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학술적 답변을 내놓았다.

서 교수는 지난 10월 26일 세종대 광개토관에서 열린 ‘10·26 의거 26주년 기념강연’ 에서 “김재규가 의로운 거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유신체제는 상당 기간 존속할 수 있었다” 고 주장했다. 10·26 사건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민주화운동세력 내부에서도 다양한 시각이 혼재한다. “김 전 부장이 박 전 대통령을 제거하지 않았어도 부마항쟁에 이은 국민적 저항에 의해 유신체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었을 것” 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심지어 “10·26 이 신군부가 등장한 빌미를 주어 오히려 군부독재를 연장시켰다” 는 극단적 부정론까지 존재한다.

서 교수는 강연에서 이러한 부정론에 쐐기를 박았다. 당시 반유신 운동의 역량이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릴 만큼 강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반유신 운동이 1977년 가을부터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었으나 여전히 학내에서 대규모 시위투쟁을 수시간 이상 전개할 능력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논증으로 서 교수는 YWCA위장결혼식과 1980년 5·15 서울역회군 등 10·26 이후 민주화투쟁이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사정들을 들었다. ‘광주학살’ 에도 왜 한동안 전국이 침묵을 지켰느냐는게 그의 반문이다.

서 교수는 유신체제를 이승만체제와 비교하면서 “이 전 대통령과 달리 박 전 대통령은 노쇠하지 않았으며 군을 확고히 장악하고 있었다” 며 4·19 와 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랬을 경우 오히려 참혹한 사태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4·19 같은 상황은 없었을 것”

김 전 부장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관련해서는 “역사에서 온건파는 중시돼야 한다” 는 말로 대신했다. 그는 “4월혁명 시기에 온건파였던 김정렬씨가 국방장관, 6월민주항쟁시기에 이한기씨가 국무총리를 각각 맡고 있었다는 점의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며 “김재규는 이 두 사람보다 훨씬 용기있는 거사를 했다” 라고 결론을 맺었다.

‘10·26 재평가와 김재규 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 로 열린 이날 강연에서 ‘김재규-장준하 밀약설’ 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다. 추진위 집행위원이기도 한 이해학 목사는 기념사를 통해 “장준하 선생이 국회의원이 돼서 전방부대를 방문했을 때 김재규 장군이 영접해 깊은 대화를 나누며 의기투합했다” 며 “장 선생이 구속됐을 때도 김 장군이 극비리에 도왔다” 고 주장했다.

이 목사는 “장 선생이 안양교도소에 있을 때 수감된 학생들에게도 ‘이 나라는 학생운동만으로 민주화를 이룰 수 없다’ 며 ‘총을 가진 군인이 나서야 한다’ 고 말했다” 며 “김 장군과 장 선생 사이에 굳은 밀약이 있었던 것” 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에 대해 필자와 인터뷰하며 “너무 상식에 어긋나서 믿기 힘들다” 며 “박 전 대통령과 사이가 나쁜 걸 아는데 보안사가 가만히 있었겠느냐” 고 반문했다. 좀더 신빙성 있는 증언이나 자료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자료로는 김 전 부장이 처음부터 민주화를 꿈꿨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며 “다만 청렴결백하고 자기가 맡은 공적인 임무에 충실한 인물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고 말했다.

이날 이 목사는 “김재규 장군은 민주화에 많은 시간을 단축시켰고 많은 희생을 줄인 애국지사” 라며 “그분의 민주화에 대한 신념이 그대로 알려지고 인정받고 명예회복이 돼야 한다” 고 말했다. 한편 같은 날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추도식에 유족 대표로 참석한 박지만 (주)EG 회장은 “선친의 공과가 객관적으로 평가되지 못하고 왜곡되는 것이 아쉽다” 고 말했다.

<신동호 편집위원 hud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