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인류문명이 고도로 발달하면 빛보다 10만배 빠른 비행체를 발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어떻게 먼 미래까지 살아보지도 않고 그 답을 알 수 있냐고?
물체가 운동하면 에너지가 증가하는데 뉴턴적 시공간에서의 에너지(mv²/2)는 물체의 질량(m)에 비례하고 속도(v)의 제곱에 비례한다. 따라서 물체가 유한한 속도를 얻으려면 유한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오직 무한히 빠른 속도를 얻을 때만 무한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특수상대론에 따르면 움직이는 물체의 에너지(mc²/ √1-(v/c)²)는 물체가 광속(c)이 될 때 무한히 커진다. 무한대의 에너지를 가해줘야만 빛의 속도가 되는 것이다. 결국 엔터프라이즈 호가 제아무리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며 속도를 높여도 광속에 가까이 다다를 뿐 광속을 넘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미래에 문명이 고도로 발달해도 이 원리를 벗어날 순 없다.
그렇다면 특수상대론적 시공간에서는 우주여행이 불가능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데 특수상대론의 묘미가 있다. 특수상대론에서 시간은 절대적인 양이 아니고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값이다. 예를 들어 엔터프라이즈 호가 달리고 있으면 지구에 정지해 있는 관측자에 비해 시간이 느리게 진행한다.
‘시간 지연’이라는 이 현상은 광속에 가깝게 비행할수록 더 두드러진다. 시간지연의 문제 때문에 스타트렉의 우주함대에서는 실제로 광속의 1/4을 정상속도로 규정하고 있다. 이 속도로 엔터프라이즈 호가 1달간 비행하면 우주선 내부의 시계는 함대 사령부의 시계보다 하루 정도 느려진다.
만약 우주선이 빛의 속도로 달리면 시간은 흐르지 않고 정지한다. 따라서 광속에 가깝게 비행하면 적당한 시간 안에 얼마든지 먼 거리를 여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우리은하의 끝까지 왕복한다면 엔터프라이즈 호의 승무원 입장에서는 단 1년의 세월이 흘렀을 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지구에서는 이 기간이 무려 8만년이라는 시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탑승자는 단지 나이를 한살 더 먹었을 뿐이지만 지구의 가족은 모두 사라진지 오래다. 8만년 뒤의 전혀 다른 미래 세계에 귀환하는 것이다.
지구나 함대사령부와 시간 차이가 많이 나지 않으면서 장거리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스타트렉의 작가는 소위 ‘초광속 여행’에 관심을 기울인다. 스타트렉에는 외계행성 바르잔의 외계인 한명이 엔터프라이즈 호를 방문해 “당신들 앞에 있는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 안정된 상태에 있는 최초의 웜홀(wormhole)이에요!”라며 바르잔의 웜홀을 팔겠다는 장면이 나온다. 웜홀은 우주의 먼 두 지점을 연결하는 일종의 시공간 터널로 장거리 우주여행에 자주 이용된다.
음의 에너지로 웜홀을 안정시켜야
아인슈타인은 고심을 거듭하다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즉 일반상대론에 따르면 시공간은 그 속에 있는 물질의 분포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휘어질 수 있는 동적인 물리량이라는 것이다. 이제 휘어진 시공간에서 웜홀을 갖고 있는 시공간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지구(A지점)에서 안드로메다은하(B지점)로 원통형 터널처럼 생긴 웜홀이 뚫려 있고 이 웜홀을 통해 여행한다고 하자. 이 웜홀이 없다면 지구에서 안드로메다은하까지 가는 최단지점은 초속 70km의 헬리오스2를 타고 여행할 때 90억년이 걸리는 경로다. 물론 웜홀이 지구 근처에 숨어있다면 웜홀이란 지름길을 이용해 수년 내에안드로메다은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90억년이 걸리는 거리를 단 수년 내에 이동했으니 마치 ‘초광속 여행’처럼 보인다.
웜홀을 통한 ‘초광속 여행’이라는 개념은 스타트렉에서 잘못 사용한 용어다. 실제 광속을 넘는 속도로 여행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벌레가 사과의 표면을 따라 기어가지 않고 사과에 난 벌레구멍을 통해 반대편 표면에 단시간에 도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과에 벌레구멍이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듯이 웜홀도 우리 우주의 곳곳을 연결하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엔터프라이즈 호의 피카드 선장에게 우주의 웜홀 지도는 성간 우주여행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 중 하나다.
실제 웜홀은 우주선이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일까. ‘아인슈타인-로젠 다리’(Einstein-Rosen Bridge)라는 웜홀은 아인슈타인의 중력방정식을 만족시키지만, 웜홀의 두 입구가
사건지평선(사건지평선 - 물질은 물론 빛조차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는 시공간의 경계.) 으로 돼 있어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 통과가 불가능한 웜홀인 셈이다. 더구나 이 웜홀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작은 섭동에도 쉽게 붕괴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양방향으로 통과할 수 있는 웜홀이 되기 위해서는 웜홀을 따라 음의 에너지를 갖는 물질이 있어야 한다. 웜홀을 따라 공간의 폭이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지려면 인력에 반하는 척력을 제공하는 물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전물리에서는 음의 에너지를 갖는 물질이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지만, 양자물리에서는 음의 에너지가 가능하다. 물론 양자적 음의 에너지를 이용해 웜홀을 구축하는 문제는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고속도로에 터널을 뚫어놓듯이, 실제로 우주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이미 자연히 존재하는 웜홀 외에 필요한 곳곳에 안정적인 웜홀을 건설해야 한다.
이제 스타트렉에서 또 다른 주요 주제인 시간여행에 대해서 알아보자. 일상경험에서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순으로 흐르며 우리는 현재란 시간에 머문다. 과거는 기억으로만 남을 뿐이며 미래는 예상만 할 뿐이지,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로 가서 간섭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대론에서는 놀랍게도 이런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 만약 어떤 물체가 빛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다면 과거의 시간으로 이동하는 게 가능하다. 물론 현재까지 빛보다 빠른 물체는 발견되지 않아 이 방법으로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
영혼을 현재에 묶어두지 말라
또 웜홀을 이용하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편의상 공간이 1차원밖에 없는 웜홀을 생각해보자. 웜홀의 한 입구(A)에서 출발한 빛이 웜홀 바깥공간을 타고 웜홀의 다른 입구(B)에 도달한 뒤 웜홀을 통과해 다시 A로 돌아오는 식의 운동을 반복한다. 이런 빛의 경로 어느 지점에서든 시간 값이 작아지는 경우는 없다. 이 경로에서 시간은 미래로만 흐른다는 뜻이다.
이제 정지해 있던 웜홀 입구 B가 가속을 받아 오른쪽으로 멀리 갔다가 되돌아와 멈춰 있게 해보자. 움직이는 물체에서는 시간지연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웜홀 입구 B 근처의 시계는 다른 부분의 시계에 비해 느리게 간다.
앞의 경우처럼 빛을 반복해 웜홀을 통과시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시공간에서 빛의 움직임을 보면 경로 간격이 점점 좁아지고 결국에는 한 경로로 수렴해 거의 동일한 경로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이 수렴하는 경로 부근에서 보면 과거(시간 8.5)에 출발한 빛이 웜홀 입구 B 조금 전까지는 미래(시간 13)로 흐르다가 웜홀을 통과한 뒤 다시 이전의 과거(시간 8.5)로 돌아간다. 시간이 과거로 흐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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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 딥 스페이스 나인’에는 행성 베이조(Bajor)에서 7만광년 떨어진 곳으로 뚫려 있는 ‘베이조 웜홀’이 등장한다. 이 웜홀을 이용하면 7만광년을 수분 만에 통과할 수 있다. |
광속에 가깝게 비행하는 우주선이 이런 웜홀을 통과하면 그 경로는 빛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피카드 선장은 시간이 미래로 흐르다가 꼬부라져 다시 과거로 진행하는 현상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웜홀을 만들 수 있다면 우주선은 적어도 이론상 얼마든지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타임머신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끝으로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초광속 여행’이나 시간여행은 물리학적 원리에 들어맞는가, 아닌가 하는 이론적인 관점에서만 다뤘다. 실제로 구현하려면 해결해야 할 난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 엔터프라이즈 호를 광속의 절반까지 가속시키는 문제만 하더라도 필요한 연료의 양은 엔터프라이즈 호 질량의 81배인 무려 3억톤이나 된다.
하지만 이같은 여러 문제 때문에 스티븐호킹의 말처럼 우리의 영혼을 지구와 현재의 지식에 묶어둘 필요는 없지 않은가! 새로운 과학적 개념은 때로 SF보다 더욱 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풍부하게 만들기 때문에.
강궁원 박사는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고등과학원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슈퍼컴퓨팅센터에서 수치상대론을 연구하며 고등과학원 객원연구원(associate member)으로도 활동 중이다. 특히 블랙홀의 양자효과(호킹복사)와 안정성, 블랙홀 충돌의 수치계산 등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