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월간조선 6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1987년 ‘KAL 858기 폭파 사건’의 폭파범으로 세상에 알려졌던 김현희(47)씨가 지난 2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 3월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과의 만남 등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97년 결혼 이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던 그녀는 2003년 말부터 몇몇 매체들이 ‘KAL 858기 폭파 사건 조작설’을 주장하면서 다시 세인의 관심을 받게 됐다.
아래는 2003년 MBC에 살던 집이 노출된 이후 단칸방에서 네 식구만 살다가 12년 만에 처음 서울에 왔다는 김현희씨와 월간조선 6월호의 일문일답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집이 비좁고 낡았나요?
“부엌이고 화장실이고 하도 좁아서 혼자 외에는 못 들어갑니다. 생쥐하고 바퀴벌레가 약을 놔도 3개월 지나면 또 생겨요. 그런데 그런 곳에서 사는 저를 국가원수 경호하듯이 그러니까 그것도 참 어색하데요.”
얼마 만에 서울에 온 겁니까?
“1997년에 결혼하면서 아예 지방으로 내려갔고, 친척분이 상을 당해서 잠깐 올라온 것 치면 한 6~7년 만에 온 것이죠. 서울이 옛날과 굉장히 많이 바뀌었어요.”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성형수술을 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정말 하셨습니까?
“성형수술 한 적 없어요. 이게 성형수술 한 얼굴이면(웃음).”
친구는 있습니까?
“사실 친구가 없어요. 처음에는 안기부 사람들과 거의 친구처럼 지냈어요. 국정원은 저한테 제2의 고향이잖아요. 그런데 그 때 그런 일이 생기니까, 진짜 등에 칼을 맞는 느낌이었어요. 그 당시엔 국정원의 ‘국’자도 듣기 싫었어요.”
- ▲ KAL 858기 폭파 사건과 관련 재판을 받던 시절의 김현희씨 모습.
교회에는 안 나가십니까?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교회 나가기가 힘들죠. 기독교TV를 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어요. 좋은 말씀 많이 나오더군요.”
가수 ‘소녀시대’를 아십니까?
“요즘 연예인들은 잘 몰라요.”
노래방에 가면 무슨 노래를 부르십니까?
“옛날 노래예요. <만남> 같은 노래를 부르는데 요즘 노래는 잘 몰라요.”
남편은 어떤 점이 좋습니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죠. 제가 자유롭게 밖에 못 나가고, 갇혀 있는 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남편은) 어디를 갔다 오면 토산품이라도 하나 사오든지, 말 한마디라도 혼자 갔다 와서 미안하다느니 그런 말을 해요.”
남편이 있어서 든든하죠?
“그럼요. 우리 가족의 방패인데요. 제가 친구를 사귈 수 없는 게 자유롭게 만날 수 없는 갇힌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감옥생활이죠. (남편은) 그 과정을 다 아는 사람이니까 다행이죠. 어디를 가도 항상 보고해야 하고, 경호원이 같이 따라다니고 다른 사람이라면 그 스트레스 때문에 1년도 못 돼서 이혼했을 거예요.”
아이들은 김현희씨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죠?
“모르죠. 또 왜 이렇게 사는지를 잘 모르죠. 최근에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쓴 <김현희의 전쟁>을 무심코 책상에 올려놨는데, 그걸 큰 애가 본 거예요. 제목의 한자는 모르지만, 뒤표지에는 제 사진도 있고 이름도 한글로 돼 있고 그러니까. ‘엄마 옛날 이름이 김현희였어요?’하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라고 대답하니까, ‘에이’ 그러면서 더 이상 말은 안 하더라고요.”
다 눈치로 아는 거죠.
“예, 더 크면 이해하게 될 건데.”
아이들 학교에는 가 봤습니까?
“일절 안 가요. 그래서 애들한테 미안하죠. ‘너는 회장, 부회장 뽑을 때 손 들지 말라’고 했어요. 회장, 부회장에 뽑히면 엄마가 학교에 가서 다 해야 하니까요.
아이들이 친구는 잘 사귀나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애들 친구를 집으로 오라고 할 수도 없고, 제 처지에 제가 갈 수도 없고요.”
오늘 내려가야 합니까?
“애들이 아직 어려서요. (큰 애는 초등학교 3학년, 작은 애는 초등학교 1학년) 숙제도 하나 하나 다 봐줘야 하고요.”
*이 기사 전문은 월간조선 6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