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받은 아이의 내면세계
부모의 양육태도 중에 거절이라는 것이 있다. 거절은 자녀를 존재적으로 원치 않는 것을 말한다. 자녀의 출산을 후회하거나 자녀를 인생의 무거운 짐 또는 불행의 원인으로 생각한다. 부모가 자신의 짐을 덜기 위하여 자녀를 남의 집에 양자나 양녀로 보내는 것도 거절에 해당된다. 자녀를 고아원에 보내는 것은 당연한 거절이다.
부모가 자녀를 거절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는 거절 받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부모가 계속해서 “안돼!”라고 말하며 자녀의 욕구를 억압할 때 자녀는 거절 받았다고 느낀다. 부모가 자녀를 친척집에 맡기면서 얼마 후에 꼭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그 약속 기한을 지키지 못할 때 자녀는 거절 받았다고 느낀다. 자녀를 거절하는 부모가 흔히 잘 하는 말이 있다. “어쩌다가 쟤가 생겼는지 몰라. 낳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저것만 없었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 불행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런 말을 자녀에게 직접 하기도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기도 한다. 모두 거절에 해당된다.
부모가 자녀를 거절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는 원치않는 임신과 출산이다. 이 경우 태아는 임신되는 순간부터 거절받는다. 둘째는 원치않는 성별을 가진 아이다. 부모가 아들을 원했는데 딸을 낳았다든지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이다. 셋째는 부모의 불행한 결혼생활이다. 부모의 갈등과 불화가 자녀를 거절하는 이유가 된다. 이때 부모는 이혼을 원하지만 자녀 때문에 못한다고 생각한다. 네째는 부모의 이혼과 재혼이다. 부모가 이혼을 하면 자녀는 모두 어느 정도의 거절감을 느낀다. 그런데 더 심각한 거절감은 함께 살던 부모가 재혼을 할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이때 부모가 자녀를 다른 보호자에게나 시설에 보낸다면 자녀는 최악의 거절감을 경험한다. 그 외에 부모가 자녀를 거절하게 되는 이유로서 자녀가 장애아이거나 지나치게 못생긴 아이의 경우, 자녀를 양육할 수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 부모가 자녀 때문에 자기의 꿈과 사회활동을 포기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 등이 있다.
부모의 거절속에서 자란 사람의 내면에는 거절받은 내면아이라는 자아가 있다. 부모의 거절은 자녀의 마음속에 거절받은 내면아이를 낳는다. 거절받은 내면아이의 특징과 문제는 무엇인가? 마음속에 사랑받고 용납받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있으나 그 욕구를 억압한다. 왜냐하면 어린시절에 부모로부터 그런 욕구가 반복적으로 거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로부터 조금이라도 관심이나 사랑을 받았다고 느끼면 그 사람에게 집착적으로 매달린다./ 거절받은 내면아이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지내는데 익숙하다. 사회생활 및 대인관계에서 고립되어 있다. 자기의 속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가 없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 및 정서적인 상호작용이 매우 단조롭고 제한되어 있으며 상대방이 해 주는 칭찬이나 비판적인 말에도 무관심하거나 무반응한다./ 이런 고립상태에서 느끼는 감정은 단지 외로움만이 아니다. 분노와 적대감이다. 분노와 적대감은 거절받은 내면아이가 지닌 상습적인 정서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그 누구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부모의 거절은 곧 세상의 거절이 된다./ 때로는 법과 질서를 위반하고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거절받은 내면아이는 자기를 통제하는 사회의 법과 질서를 과거에 자기를 거절했던 부모와 동일시하는 무의식적 태도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거절받은 내면아이는 누구를 만나든지 항상 거절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이 있다. 그래서 상대방과 가까워지고 싶지만 다가가지를 못한다. 또는 상대방이 다가오면 도망 가거나 먼저 거절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혹시 가까워졌다가 상대방이 자기를 버리고 떠나는 거절의 아픔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거절하는 아픔이 거절받는 아픔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방으로부터 거절받지 않기 위해서 상대방의 이용과 착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화를 내거나 단호하게 행동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기의 그런 행동은 상대방이 자기를 떠남으로써 또 한번의 거절감을 느끼도록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절받은 내면아이는 부적절한 거절감에 시달린다. 부적절한 거절감은 거절에 대한 두려움과 차이가 있다. 부적절한 거절감은 거절감을 느끼지 않을 상황에서도 거절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쉽게 오해를 하고 쉽게 상처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신경이 쓰이고 상처를 받는다.
거절받은 내면아이는 남을 믿지 못하고 항상 의심이 많다. 상대방이 자기에게 해 주는 칭찬의 말이나 호의적인 행동을 그대로 받지 못한다. 왜 그럴까? 어려서 부모의 거절이 자녀에게 부정적인 자기표상을 지니도록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파괴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왜곡된 행동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의 내면아이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상대방의 호의적인 행동을 의심하고 시험하다가 그것이 밝혀져 상대방을 분노하게 만들며 그 결과 다시 거절받는다./ 수치감과 낮은 자존감에 시달린다. 수치감은 거절받고 버림받은 내면아이의 주된 정서 중의 하나다. 수치감은 죄책감과는 다른 것이다. 죄책감은 “내 행동이 잘못이었어. 내가 실수했어.” 라고 느끼는 것이지만 수치감은 “내가 잘못이었어. 내가 실수였어” 라고 느끼는 것이다. 수치감은 자기 존재 자체를 거절하는 것이다./ 때때로 무력감과 우울감을 느낀다. 매사에 의욕이 없고 힘이 없다. 에너지가 바닥이 난 것 같다. 휘발유가 떨어진 자동차처럼 앞으로 나가지를 못한다./ 거절받은 내면아이는 알콜, 마약, 섹스 등에 빠지거나 중독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런 자극적인 영향을 받고 있을 때에는 부모나 세상으로부터의 거절감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들국화(가칭)는 어려서 부모로부터 거절과 방치를 경험했다. 들국화는 딸만 여섯이 있는 집안에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 병석에 있던 할아버지도 아들을 낳기를 기다렸는데 딸로 태어난 것이다. 들국화의 부모는 크게 실망하였으며 좌절감을 느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들국화가 태어난 지 삼일이 되는 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엄마는 들국화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도 할아버지 따라(저 세상으로) 가거라.” 아빠와 엄마의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날마다 한숨과 한탄 그리고 서로 소리지르며 싸웠다. 엄마는 집안일은 물론 농사일도 도맡아 하셨다. 들국화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들국화가 세 살인가 네 살 때의 기억이다. 할아버지의 제삿날이었다. 추운 겨울밤, 들국화가 갑자기 사라졌다. 아무리 동네를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것일까? 나중에 이웃집 툇마루 밑에서 발견되었다. 이웃집 주인이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발견한 것이다. 들국화는 셔츠 위에 윗옷 하나만 걸치고 추위에 떨고 있었다. 들국화는 이 이야기를 할아버지 제사 때마다 귀가 닳도록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들국화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편식을 했으며 아침마다 늦게 일어났다. 유난히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외삼촌이 집에 오시면 집에 들어가지를 못했고 담임선생님이 사시는 동네를 지날 때면 몸과 마음이 굳어지고 긴장이 되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들국화는 항상 의기소침하였고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불안했다. 특히 남자 앞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누군가 자기에게 조금만 관심을 보이면 그 사람에게 집착하고 매달리게 되었다. 그래서 쉽게 이용을 당하고 아픔을 경험하기도 했다. 들국화는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는 것은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들국화의 결혼생활은 평탄하지 못했다. 남편으로부터 쉽게 상처를 받았으며 과도하게 분노를 표현했다. 마음속에서는 너무나도 사랑받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막상 행동은 그 반대로 했다. 첫 아기를 낳았을 때 들국화는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 아기를 양육하는 것이 힘겨웠고 젖을 먹이는 것이 싫었다. 들국화는 자기 안에 거절받은 내면아이의 특징들이 거의 다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들국화에게 행복했던 기억들도 있다. 아름다운 자연은 그녀의 놀이터였고 동네 친구들은 세상과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을 배울 수 있는 좋은 놀이의 과정이 되었다. 들국화는 많이 치유되었다. 치유상담연구원에서의 공부와 영성치유수련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들국화는 지금도 그 치유와 회복의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들국화의 노력과 변화에 지지의 박수를 보낸다. 내면의 치유와 회복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절받은 내면아이를 지닌 사람의 내적세계는 분열되고 고립되어 있으며 외부환경으로부터 철수되어 있다. 치유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분열되어 있는 내부세계를 통합하고 고립되어 있는 그의 자아를 외부세계와 연결 지을 수 있도록 충분히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상담자는 과거의 부모에게서 경험할 수 없었던 참된 사랑과 용납과 존중을 경험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 주어야 한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내면아이를 다시 양육하는 재양육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절받은 내면아이를 치유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에 이뤄지는 진정한 만남과 수용적 관계의 경험이다. 이것이 어떤 상담기법보다 중요하다. 집단정신치료의 전문가인 어빙 야롬(Irving Yalom)은 이렇게 말했다. “치료의 핵심에 이르면 치료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발생하는 깊은 인간체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고 싶다. “치료가 깊은 인간관계의 체험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면 치료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발생하는 진정한 영적체험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한 상담자라 할지라도 내담자를 완전한 사랑으로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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