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가계의 좌익프락치 전력
박정희가 언제 빨갱이 전력을 가졌냐고 묻는 박빠들이 많아서 부득이 이 주제에 관해서는 그래도 손대어본 적 있는 본인이 글 올리는 편이 낫겠다 싶어 몇 자 쓴다.
월간조선[지난호]에 의하면, 박정희는 만군시절 이미 여운형의 건국동맹에 가담한 것이 드러난다.
여순반란의 주모자인 최남근은 봉천군관5기생출신, 김종석은 일본육사출신으로 박정희의 일년선배, 박승환은 건맹 군사조직으로 여운형의 무장세력이 독립을 위해 필요하다는 소신으로 만군을 찾아다니며 포섭대상을 물색, 박정희와 최챵윤도 이 때 가담했다.
38선이 그어진 후 최창윤은 북에 갔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이로 말미암아 공산당에 치를 떨게 되었다. 그 경험으로 인해 한국군 내 남로당 점조직이던 만군시절의 동료인 최남근과 박정희 등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전향을 촉구하였지만, 최남근은 망설이다 결국 여순반란 때 수상한 행동으로 붙잡혔고 박정희도 전향하지 못한 채, 최남근 체포 한달 여후 체포되었다.
최남근이 고문 취조당할 때 박정희는 배석해 있었다고 한다. 박정희는 여순반란의 토벌작전 작전회의 발표장교였으니 당시 군의 내부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 짐작갈 것이다.
만군시절 박정희를 포섭했던 박승환은 44년1월,45년2월, 8월 세 차례 이상 국내에 들어와 여운형과 군사문제를 상의했으며 북경과 연안을 오가며 혁명단체와 연락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속에서 만주군 내 조선인들 다수가 포섭된 것이다.
월간조선에 의하면, 박정희는 동기와 후배들에게 인기높은 군인이었다. 국방부 특명 제5호로 1948년12월20일 있은 용산 육군본부 법정에서의 박정희 죄명은 "반란기도죄"였다.
이하는 오마이뉴스 자료.
""박정희는 남로당이 탐낼만한 '최고의 성분' 인물"
▲ 김점곤 장군 | |
"춘천 시절 남로당 군사부 총책 이재복이 춘천까지 찾아와서 박정희를 만나곤 했습니다. 그 때 박정희는 나에게 이재복을 '숙부'라고 소개했습니다. 박정희가 체포된 후 그의 자술서를 봤더니 이재복을 통해 입당했다고 돼 있더군요."
이어진 김점곤 원장의 설명은 더 설득력이 있다. 김 원장은 "남로당에서 박정희에게 군 총책을 맡길 때 이미 그는 당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며 "박정희는 빈농 출신에다 형의 죽음 때문에 원한이 있었고, 특히 사범학교 때 조선공산당사건을 접했으며, 또 군관학교 수석 졸업 등 이른바 '최고의 성분'을 가지고 있어 남로당 측에서 탐낼만한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참조 3] 조선인민보 대변인 집에서 나온 조선공산당 폭동선동계획서 - 1946.9.25. 조선일보
[참조 4] 경북폭동 관련 발표문 - 1946.10.29. 한종건 진압군 총사령관 발표문 소개.
[참조 5] 군위지역 폭동 상황 설명 -- 1946.10.29. 조선일보 한종건 총사령관 발표 중.
[참조 6] 조선공산당 김일성 위원장 추대 및 민주주의민족전선 발표 - 1946.2.21 조선일보
[참조 1] 기(이미) 상황을 간단히 말쌈드리면, 선산, 구미 지방폭민들은 10월3일 오전10시경, 선산경찰서를 접수하고 선산경찰서의 간판을 파괴하고 기(이미) 대신 [선산인민위원회 보안서]라는 간판을 내걸고
[참조 2] 간판을 내걸고, 경찰서 유치장에는 서장 이하 서원 20여명과 지방우익정당요인들을 구속하고 서내에는 총무.수사 등의 부서와 인사까지 결정하고, 소위 [인민재판]을 개시하여 국민의 인권을 자유로(마음대로) 유린하고 있을 때, 10월5일 오전1시 경, 경성(서울)로부터 도래(도착)한 응원부대와 약 30분간 교전 후, 경찰청사를 탈환하며, 유치장에 구속되어 사형에 직면하고 있던 수십명의 생명을 구조하고, 동시에 지방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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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3] [아래는 대구대폭동이 나기 6 일 전이던 9월25일 UP 기자에게 취득된 남로당의 민중폭동 선동 계획문건
큰 제목: 조선공산당의 선동투쟁계획 -UP기자 '리지'씨 제공.
서울주재 미국UP통신사 특파원 리치씨는 조선인민보 편집인 고재두씨 가택수사로 발견된 조선공산당의 '9월의 선전선동 급 투쟁계획서'라고 제목을 붙인 9월의 호한(큰날개짓)한 문ㅅ... 동문서의 1/3은 계획 중의 남조선O란계획의 담당자인 프롤레타리아층에 대한 일과를 상세히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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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는 2월10일 "조선민주주의진용의 위관"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가튼 요지의 발표를 하였다.
- 해방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 조류의 하나로 민주주의 운동이 혁발하기 시작되었고 모든 민주주의적 정당과 대중단체가 싹트게 되었다. ... ㅡ. 지난 1월9일에 북조선에서는 김일성씨를 위원장으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수립되여 13명의 위원을 천거한 바 구성으로 보아 가장 민주주의적 조직이다. ...
우측아래 기사: "완전통일로 자과하지 않는다." - 민족전선 결성 후의 선전부 발표 - "민주주의민족전선 선정부장 김오석씨는 20일 정오 기자단과 회견하고 다음과 가튼 제목의 담화를 발표... 금반 활성된 "민전;民戰"은 인민당공산당 등의 국내의 대표적 민주주의정당과 임시정부에서 탈퇴한 김O..."
***걸핏하면 - 논리가 딸릴 적마다 - 무고한 상대에게 '운동권 출신'이니, '좌빨'이란 올가미를 씌우려드는 악습을 가진 자들은, 박정희 가문을 보고, 그런 출신이 어쩌면 더 국가를 위해 더 큰 일을 할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는 상상력을 키우기 바란다. 파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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