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의 개요 및 전개
1.직접적인 배경
-해방이후 이념적 갈등이 심화되어 좌익, 우익, 중도세력으로 각자의 세력결성
-이승만이 집권하면서 친일세력과 손을 잡으면서 친일파가 각 분야의 주도세력으로 활동
-특히 일제경찰이 그대로 수용되어 일제치하의 반일운동가 및 양심세력에 대한 견제 및 탄압
-미 군정에 의해 국방경비대(국군)가 창설되면서 좌익, 우익 구분 없이 모집하였고 경찰의 군인에 대한 멸시와 충돌이 심화됨
-국방경비대에 대한 남로당의 침투와 숙군 작업 진행
-제주주둔 연대장이 중위에게 피살당하자, 여수주둔 14연대에 대한 숙군 작업
-14연대 좌익 요시찰 인물인 김지회에 대한 구속이 증거불충분으로 무산됨.
2. 간접적인 배경
-미군정의 남한 단독선거 결정으로 이에 반대하는 남로당의 파업, 지서 습격, 우익 단체인사 테러 발생
-그러나 타 지역 보다는 온건세력이 많았음.
-해방이후 해외에서 귀환 동포들이 증가하여 식량 부족
-여수에서 도정공장주가 이윤이 박하다하여 도정 생산 중단
-식량에 모래를 섞거나, 착복, 공출한 쌀이 관리당국의 부주의로 부패함.
-48년 7월의 수해로 전남지역 많은 이재민 발생
3. 전개과정
-여수에 주둔중인 국방경비대 14연대에서 1개 대대를 착출하여 제주도 봉기(4.3항쟁) 를 진압하라는 명령 하달.
-10월 19일 저녁 10시 10분 지창수가 승선대기 중이던 장병들에게 “경찰이 쳐들어온다, 제주도 출동을 반대한다. 인민군이 남진 중이다”고 선동하여 반대하는 하사관 사살.
-무기고 탈취 및 나머지 2개 대대 합세하여 2,500여명 반란군으로 가담. 23명의 좌익계 여수수산학교 학생 합세
-수산학교 학생들의 안내로 여수시내 진격
-부대 내 장교 20명 사살, 봉산파출소 점령, 여수경찰서 점령
-관공서, 신문사 점령, 경찰, 우익인사 우익청년단 체포 및 즉결사살
-순천진격, 순천역에서 순천경비중대병력 합세, 광주에서 진압출동한 4연대 지원 병력도 합세. 경찰 패퇴, 20일 오후3시경 순천 점령
-반란군은 3개부대로 편성. 구례·남원 방향, 보성·화순·광주방향, 광양·경남 방향으로 나뉨.
-반란군이 도착하기 전 좌익토착세력에 의해 지서 등 점령 및 경찰 피살.
-벌교 세재터널 경비병력 및 보성읍 주둔 중대병력 합세
-고흥지역은 반란군과 동조한 지방민이 합세하여 저항하는 경찰관 7명, 주민 6명 살상.
4. 진압과정
-광주에 토벌사령부 설치(사령관 송호성 준장)
-전군 15개 연대 중 3.8선을 방어하는 8개 연대를 제외한 7개 연대 파견
-23일 순천 탈환 및 소탕작전 완료, 반란군 지휘부는 백운산으로 도주
-구례· 곡성 22일 탈환, 보성· 광양 24일 탈환, 고흥은 25일 10경 탈환
-여수는 반란군의 저항 심함. 진해 해군부대, 공군 연락기, 육군 장갑차 동원.
-여수 1·2차 탈환작전 실패, 반란군 주력부대는 산악지역 및 백운산 지역으로 피신. 시내는 좌익무장학생 및 청년들로 반격.
-27일 여수 탈환 및 소탕작전 완료(대부분의 주력부대는 지리산 등지로 피신)
5. 반란폭동군에 의한 우익 피해상황
-여수: 경찰 74명 포함 200여명 사망
-순천: 경찰 400여명(전사자포함) 포함 900여명 사망
*. 순천 피해상황이 큼, 순천서장 화형당함, 순천경찰서 앞마당에서 경찰 70여명 학살
-보성: 경찰 44명(전사5명, 피살39명), 민간인 15명 피살
*.조성지서에서 경찰 나체로 30명 총살
-고흥: 경찰 7명, 민간인 6명 피살
6. 진압군에 의한 양민 피해 및 부역자 색출과정
-제 1단계: 거의 전 읍민을 학교, 공공시설에 집결
-머리가 짧은 자, 군용팬티를 입은자, 손바닥 총을 든 흔적이 있는자, 흰 지까다비를 신은자 등 색출작업
-경찰관, 청년단원, 학련생, 우익요인 등의 적발을 통해 폭동군과 부역자 색출.
-폭동군의 즉결처분 가담, 인민재판에서 처형에 앞장섰다고 적발된 자는 즉석에서 곤봉, 개머리판, 체인 등으로 타살, 총살.
-나머지는 따로 수용되어 재심사를 받거나 계엄군이나 경찰에 넘겨져 심문과 재 판을 받음.
-순천은 북국민학교 교정에 5만명 집결
-경찰은 악질적이라고 판단한 박창길 검사 등 12명 순천농업학교 교정에서 총살.
*. 박창길 검사는 사이가 안좋은 경찰이 개인감정으로 고발하여 피해.
-여수는 서국민학교 등 인근 학교에 4만명 집결
-생존경관, 관공서원, 청년단원, 학생연맹원들에 의해 폭동군 및 부역자가 색출
-교사 뒤편에서 즉결 총살, 백두산 호랑이 김종원 대대장 일본도로 즉결참수
-만성리 터널 뒤쪽에서 집단총살, 희생자 수를 알 수 없음.
-반란군의 피신으로 전남 전지역에 계엄령 확대 선포
7. 전라남도 보건후생부 발표 피해상황
사망 2,634명, 중상 1,128명, 경상 488명, 행불자 4,325명
*. 고흥군 사망 26명, 중상 42명, 경상 8명(초기 반군에 의해 13명 피살)
8. 고흥군 주요 학살 제보건
-남양 장담 청년 8명 전신주절단 범인으로 몰려 경찰에 의해고문 및 총살
-과역 유동 주민 7명 (구)과역면사무소 앞에서 진압군 환영만세 부르다가 진압군에 의해 피살
-남양 장담 S 전 면장 반란군 참여로 총살
-두원 금오 집안간의 감정으로 제보되어 읍내 공동묘지에서 3명 피살, 피신한 아 들의 보복으로 마을 주민 23명 피살
-두원 동촌 지서 근무로 반란군에 의해 1명 총살
-두원 관덕마을 전소
-포두 송산 붉은돌 고개에서 반란군에 의한 o명 집단학살
-경찰의 팔영산 소개작전으로 백운동, 안양골에서 o명 피살
-녹동에서 경찰에 제보로 o명 집단학살(여순골 조사 중)
'역사 > 보도연맹,형무소재소자 학살사건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여순반란사건 14연대 반란과 제주4.3사건 무장폭동-체험수기 (0) | 2012.03.22 |
---|---|
[스크랩] 여순사건의 배경과 전개과정(안종철) (0) | 2012.03.22 |
[스크랩] "죽은 자를 위령하는 자는 문학이다" (0) | 2012.03.22 |
[스크랩] "이 자리에 오기까지 60년이 걸렸습니다" (0) | 2012.03.22 |
[스크랩] 순천판 노근리 사건 ‘매곡동 학살사건’의 진실을 찾아서 (0) | 2012.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