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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 장평 옛우산분교에 둥지를 튼 지렁이 생태학교에서 삽을 든 진병교씨. 그는 이곳에서 지렁이와 더불어 남은 음식물을 자원화하는 아름다운 체험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체험학습장 분변토를 이용한 주말농장을 꾸려가면서,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지렁이를 귀하게 모시 는 마음을 퍼뜨릴 작정이다. |
ⓒ 전라도닷컴 | ‘지렁이가 용됐네’라는 말이 있다. 지렁이 처지에서 보자면 유쾌한 말은 아닐 것이다. 승천하는 용을 꿈꾸기는커녕 2억만년 세월을 묵묵히 땅을 경작하며 살아 온 지렁이. 그런 공로에 대한 어이없는 무지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말을 내뱉겠는가. 하지만 지렁이는 이런 몰이해와 편견 속에서도 ‘눈 감고 귀 막고 입 다문’ 수행자처럼 그저 쉬임 없이 제 할 일을 다해 왔다.
사실 지렁이는 눈도 귀도 코도 뿔도 다리도 없다. 그런 미물이기에 힘없는 존재들의 대명사가 되었을 터이다. 근거 없는 모욕을 감내하던 사람들이 마침내 불끈 일어서는 그 순간 앞세우는 무기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그 오래되고 단단한 말 아니었던가. 이빨도, 발톱도, 독침도 없는 평화주의자 지렁이, 이런 지렁이의 존재의 의미를 알아채고 지난 20년 동안 지렁이를 ‘모시고’ 살아 온 사람이 있다.
‘눈 감고 귀 막고 입 다문’ 수도자처럼 그가 내민 명함엔 밀짚모자 쓰고 삽을 든 지렁이가 웃고 있다. 인터넷 세상에서 쓰는 이름이 ‘지롱’(gilong)이란다. 그 이름으로 보면 지렁이 형님뻘쯤 될 법한 진병교(46)씨는 전라도 1호 지렁이 농장을 꾸려 온 사람이다. 그이의 지렁이 사랑에 주목한 장흥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발판으로 최근 전국 유일의 ‘지렁이 생태학교’(장흥 장평 옛우산분교)의 문을 열었다.
그 역시도 어린 시절엔 비 오는 날 땅 위로 기어 나온 지렁이를 이유 없이 밟아 죽이거나, 햇살에 말라죽은 지렁이를 나뭇가지에 걸쳐서 갖고 다니면서 여자애들을 놀리고 다니던 개구쟁이였다. 하지만 모두가 징그럽다고 하는 그것에 어쩌다가 준 눈길이 평생의 사랑이 돼 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그는 지렁이 안부가 궁금하다.
“내 손으로 밥상 차려 먹이고 키우는 것이니까.” 하지만 날마다 보는 얼굴이라고 해서 지렁이가 알아보고 좋아하길 하나, 졸졸 따라다니기를 하나, 먹이 주는 수고를 아나…. 말이 키우는 것이지, 눈 한번 마주치지 못하는 미물들이니 도통 키우는 즐거움이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그는 곧잘 말머리에‘재미있는 것은’이라는 말을 붙인다. 그 녀석들이 고기보다 수박껍질을 좋아한다든지, 그걸 주면 이빨이 없는 녀석들인지라 단단한 쪽이 아니라 허연 속껍질부터 빨아먹기 시작한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얼굴에는 무척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짓게 마련인 환한 웃음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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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렁이는 보습작용이 뛰어나서 클레오파트라도 화장품으로 썼답니다. 여러분들 루즈도 이 것으로 만들죠.” “오매 그랑게 남자들이 지렁이를 많이 묵는단 말이네 잉.” “하하하하” 지렁이 생태학교에서 지렁이화분을 만들고 있는 장흥군여성단체 협의회회원들. ‘부엌 정화사’로 지렁이 를 모시러 왔다. |
ⓒ 전라도닷컴 | 지렁이가 꿈틀하는 재주 부리면? “이 녀석들은 몸에 걸친 게 아무것도 없어요. 온도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죠.” 지렁이가 살기 좋은 환경은 15∼20도. 겨울에는 동면하는지라 실상은 여름나기가 가장 어렵다. 자연 상태에서는 고작 6개월이 수명인 지렁이를 그는 3살까지도 키워 왔다. 그 지극정성이야 열 효자 정성은 족히 됐을 터.
지렁이로 말하자면 그런 정성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렁이는 아주 유능한 청소부죠. 날마다 자기 몸무게의 두 배나 되는 유기성 폐기물을 먹고 그것을 분변토로 만들어 내거든요.” 그 분변토는 가장 완숙된 퇴비이며 보습력이 탁월하다. 클레오파트라가 지렁이의 체액을 목욕물에 넣은 이유다.
“분변토는 사실 퇴비라기보다는 흙에 가깝죠. 호주에서는 이 지렁이 분변토를 전매해요. 정부의 토양 관리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죠.” 목축업을 주업으로 삼는 호주에서 사막을 초지화시킨 일등공신은 지렁이. 그래서 단위면적당 지렁이가 얼마나 있느냐로 농지 가격이 결정된다. 지렁이 없는 땅은 ‘악토’(惡土)라는 것. 유기농 있는 곳엔 반드시 지렁이가 있게 마련. 쿠바를 유기농의 메카로 만든 숨은 주역은 지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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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닷컴 | “날카로운 발톱은 없지만 부드러운 몸놀림과 끈적끈적한 분비물로 땅을 가는 것이죠.” 땅 1㎡당 최고 250마리까지 살 수 있는 지렁이가 팔 수 있는 땅 속 깊이는 2.5m(목이 마르면 땅 밑으로 4∼7m나 파고 들어가 물을 찾아낸다고 한다), 한없이 느려 보여도 그 움직임으로 하루에 4km까지도 이동한다. 이렇게 흙을 갈아엎고 공기를 섞어주며 빗물이 잘 스며들게 하여 땅을 살려내는 지렁이에게 ‘자연의 쟁기’니 ‘위대한 대지의 경작자’니 하는 별명은 결코 과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지렁이는 일년에 20∼30리터의 흙을 먹고 배설물로 땅을 기름지게 하고 있으니 ‘지구의 장(腸)’이라는 별명 역시 그의 말없는 노고를 인정하는 것. 지렁이가 갈아주는 흙의 양은 1ha당 많게는 연간 300톤, 지렁이가 배설하는 똥의 양은 1ha당 연간 25톤. 과연, 지렁이는 힘이 쎄다! 지렁이 ‘꿈틀 하는 재주’가 바로 그것이렷다!
“알고보면 사람이 더 징그럽다!”…지렁이 만세삼창 인간으로 인해 나날이 황폐해져 가는 땅 속에서 지구를 경작하고 청소하는 지렁이는 죽은 땅을 숨쉬는 땅으로 살려 놓는 숨은 일꾼이며 모든 들풀들의 어머니다. 하늘에는 태양이, 땅속에는 지렁이가 있어 지구는 이처럼 아름다운 별이 될 수 있었던 것. 그런 이유로 지렁이는 벌레로서는 처음으로, 지난 2001년 환경단체 풀꽃세상이 ‘드리는’ 제7회 풀꽃상을 받았다. 그 시상식에선 지렁이를 보석처럼 귀하게 여기자는 지렁이 만세삼창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으니!
“지렁이가 살 수 없으면 사람도 살 수 없다!” “지렁이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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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닷컴 | “알고 보면 사람이 더 징그럽다!” “지렁이 만세!” “지렁이를 살기 힘들게 만든 사람들은 각성하라!” “지렁이 만세!” 이젠 ‘징그럽다’는 말이 지렁이에서 나왔다는 식의 근거없는 지렁이혐오증은 버려야 할 때. 바야 흐로 ‘부엌 정화사’로 모시기 위해 지렁이를 ‘분양’받는(아파트도 아니고) 시대가 도래했다. “인류 출현 50만년, 지렁이 출현 2억만년이라는 생명연대기로만 봐도 감히 우러러 볼 수 없는 대선배이신 지렁이를 이제야 알아모시는 것이지요.”
남은 음식물을 퇴비로 바꾸기 위해 지렁이화분을 만들어 가는 이들에게 그가 당부하는 말이 있다. “지렁이는 음식물을 처리하는 기계가 아니라 온전한 생명이며 훌륭한 농부”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