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6월3일 프랑스 투르 근교의 샤토드캉데에서 세기의 결혼식이 치러졌다. 그러나 하객은 불과 16명뿐인 쓸쓸한 결혼식이었다. 신랑의 가족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신부는 결혼의 상징인 순백의 드레스 대신 푸른색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영국 국교회 신부의 주례로 치러진 이 결혼의 당사자는 이번이 세 번째 결혼식인 이혼녀 심프슨 부인과 그녀를 위해 왕위를 버린 에드워드 8세였다.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이 없이는 국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1936년 12월 11일 밤 대영제국의 왕 에드워드 8세는 BBC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자신의 사랑과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발표했다. 발표의 요지는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국왕의 자리에서 퇴위하겠다는 것이었다. 영국 국민과 전세계인들은 경악했다. 도대체 어떤 여자가 대영제국 국왕의 마음을 이토록 사로잡은 것일까? 세계인의 관심은 한 여인에게로 쏠렸다. 그녀는 미국인으로 귀족신분도 아니었고, 이혼경력도 있으며, 그때까지도 심프슨이라는 남자의 아내였던 윌리스 심프슨, 통상 심프슨 부인이라고 불리던 여인이었다. 1930년대, 아직 대영제국의 영광이 완전히 기울지 않았던 시절. 영국 왕실은 국가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야만 했다. 그러기에 국왕 에드워드 8세와 심프슨 부인의 사랑은 그저 한때 지나가는 왕의 불장난 일뿐이라고 치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에드워드 8세의 사랑은 진심이었다. 그는 국왕 즉위 후 심프슨 부인과 결혼할 길을 백방으로 찾아보았지만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되었다.
당시까지 너무나 보수적이었던 영국 왕실은 이혼경력이 있는 평민 미국여인을 왕비로 맞을 수 없었다. 영국 수상이던 볼드윈과 영국의회, 영국 국민들도 에드워드 8세와 심프슨 부인의 결혼에 반대했다. 국왕 즉위 이전부터 멋쟁이 황태자로 인기가 드높던 에드워드 8세였기에 영국 국민들은 그의 파격적 사랑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심프슨 부인은 국왕을 현혹시키는 천하의 요부로 영국 국민들의 공적이 되었다. 영국 국민들은 심프슨 부인이 왕의 숨겨진 애인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녀가 공식적으로 영국의 왕비가 되어 영국을 대표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치욕이라고 생각했다. 에드워드 8세는 왕위에 오른 11개월 동안 지난하게도 그의 사랑을 결혼으로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그의 편을 들어 준 것은 오로지 윈스턴 처칠 한 사람 뿐이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녀를 버리거나 왕위를 버려야 했다.
베시 윌리스 워필드 스펜서 심프슨 윈저 공작부인(Wallis Warfield Spencer Simpson, Duchess of Windsor)이 정식 이름인 심프슨 부인은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스무 살에 해군 조종사 스펜서와 결혼했는데 남편의 의처증과 폭력에 시달리다가 결혼 10년 만에 이혼하였다. 이혼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세계를 떠돌던 그녀는 이듬해 영국인 사업가 심프슨과 만나 결혼하고 영국 런던에 정착하였다. 이것이 심프슨 부인과 당시 황태자이던 에드워드 8세가 만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원래 침착하고 지적이며 세련된 감각을 가지고 있던 심프슨 부인은 남편의 재력을 바탕으로 단숨에 런던 사교계의 떠오르는 별이 되었다. 1931년 어느날 심프슨 부인은 지인이 연 파티에서 대영제국의 황태자 데이비드(훗날 에드워드 8세)를 만난다.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푸른 드레스를 우아하게 차려 입은 심프슨 부인은 황태자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이후 두 사람은 유부녀였던 심프슨 부인의 상황을 고려하여 우정을 가장하여 만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그 사랑을 숨기지 못하였다. 심프슨 부인의 남편은 강력한 연적인 에드워드 8세 앞에 가볍게 무릎을 끓었다. 이혼을 앞둔 심프슨 부인은 얼마 전 왕으로 즉위한 에드워드 8세의 아내로 대영제국의 왕비가 될 날을 꿈꾸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8세는 영국전체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는 결국 왕위를 버리고 심프슨 부인을 선택했다. 1936년 12월 퇴위한 에드워드 8세는 오스트레일리아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그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된 남동생 조지 6세로부터 윈저공작의 작위를 받았다. 그리고 심프슨 부인의 법적인 이혼절차가 마무리되기를 기다려 1937년 6월 3일 프랑스에서 마침내 결혼식을 올린다. 영국 국교회 신부를 주례로 모신 영국식 결혼식이었지만, 왕실의 결혼식이라고는 할 수 없는 초라한 결혼식이었다.
영국 왕실은 단 한 사람의 하객도 보내지 않았다. 이제는 윈저공이 된 에드워드 8세의 결혼에 단호히 반대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윈저공작의 부인이 된 심프슨 부인에게 공작부인의 지위도 내리지 않았고 그녀가 전하로 불리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영국왕실은 철저히 그녀를 무시하고, 다만 윈저공작과 함께 사는 ‘평민’ 아내로만 대우했다. 에드워드 8세는 자신의 아내에 대한 영국왕실의 냉담을 매우 마음 아파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고집스러운 조치를 취한 것은 에드워드 8세의 어머니 메리왕비(조지 5세의 왕비) 때문이었다.
한편 심프슨 부인은 영국왕실의 조치에 반항이라도 하듯 결혼식 날 하얀 웨딩드레스 입는 대신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온몸을 푸른색으로 장식했다. 에드워드 8세와의 첫 만남을 기념하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의미에서 선택한 색이었다. 결혼식 자체는 초라하였지만 세계인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던 이 결혼식은 심프슨 부인의 푸른 웨딩드레스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그녀가 입은 드레스의 푸른색은 ‘심프슨 블루’ 라고 불리게 되었다. 심프슨 블루는 귀족과 왕족에 굴하지 않은 당당한 서민을 뜻하는 색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이 결혼으로 에드워드 8세 또한 영국왕실로부터 배척당했다. 본의 아니게 망명객이 되어 영국 본토로 돌아가는 것이 거부된 것이다. 여전히 국민들에게 인기가 높던 에드워드 8세가 영국에서 살 경우, 어부지리로 왕위에 오른 조지 6세의 자리가 불안해질까 두려워한 영국왕실과 정부의 조치였다. 결국 에드워드 8세는 도버해협을 건너지 못하고 프랑스에 정착할 수 밖에 없었다.
왕의 자리마저 버리게 만든 여인, 심프슨 부인은 비록 공식적으로 왕비도, 공작부인도 되지 못했지만 결국 에드워드 8세와의 결혼으로 신분 상승 이상의 명성을 얻었다. 결혼 이후 에드워드 8세와 심프슨 부인은 윈저공작부부로서 유럽 여러 국가를 방문하고 수많은 파티와 공식, 비공식 행사에 참여하였다. 2차대전 기간 중 에드워드 8세는 프랑스 담당 연락 장교직을 맡기도 했고 1940년부터 45년까지는 서인도제도의 영국식민지 바하마의 총독으로 그 지역을 통치하였다. 그러나 심프슨 부인과 영국왕실은 오랫동안 화해하지 못했다. 심프슨 부인이 왕실가족으로 공식 행사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은 결혼한 지 30년이나 지난 1967년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에드워드 8세와 심프슨 부인은 35년간 해로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
1972년 에드워드 8세가 프랑스에서 먼저 숨을 거두자 심프슨 부인은 검은색 상복 위에 심프슨 블루의 숄을 걸치고 장례식장에 나와 다시 한번 그들의 로맨스를 상기시켰다. 영국왕실은 에드워드 8세가 윈저성 내 프로그모어에 묻힐 것을 허락하였다. 왕실 밖으로 내쫓았던 에드워드 8세를 다시 끌어안은 영국왕실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었다. 14년 후 1986년 숨을 거둔 심프슨 부인도 남편 에드워드 8세의 곁에 나란히 묻힐 수 있었다. 마침내 영국 왕실과 심프슨 부인의 완전한 화해가 이루어진 것이다. 심프슨 부인의 마지막 유언은 심프슨 블루의 옷으로 갈아 입혀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최근 심프슨 부인과 에드워드 8세의 세기의 로맨스에 의문을 품게 하는 공식문서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에드워드 8세와 염문을 퍼뜨릴 당시 심프슨 부인에게 있던 또 다른 애인에 대한 이야기나 독일 나치에 대한 심프슨 부인의 열렬한 지지와 주영대사로 나와있던 독일인과의 밀회 이야기 등은 왕위 마저 박차고 나온 에드워드 8세의 로맨스를 어둡게 하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심프슨 부인은 20세기 초 보수적이던 영국왕실에 파문을 일으켰고 왕위까지 버릴 만큼 굳센 사랑의 힘을 증명한 여인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심프슨 부인과 에드워드 8세의 세기의 로맨스는 심프슨 부인 본인의 자서전 <심프슨 부인과 에드워드>(윌리스 윈저 작, 홍성균역 학일출판 1986)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는 절판된 상태로 도서관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책이다.
<라이벌-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역사 속 10대 앙숙들>(콜린 에번스 작, 이종인 역) 중 <심프슨 부인 vs 퀸 마더 | 왕비가 되고 싶었던 미국 여인과 왕비가 되기 싫었던 영국 여인> 챕터에서는 동서지간이었던 심프슨 부인과 조지6세의 왕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과의 36년간의 갈등과 반목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