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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석굴암 본존불상

감효전(甘曉典) 2012. 2. 18. 16:14

 

▣ 석굴암 본존불상

 

석굴암 본존불상은 그 종교성과 예술성에 있어서 세계의 종교예술사상 탁월한 유산이다.

특히 간다라식의 어깨선, 두 팔과 두 손, 가부좌를 한 두 다리와 무릎 등이

인공적인 부자연스러움이 없이 부드럽게 생명력을 표현하고 있다.

본존불의 손은 촉지항마(觸地降魔)의 인상(印相)을 나타내며,

이것은 도가 이루어져 인간의 지혜와 능력이 극치에 달한 때에 생기는

 불가사의한 승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본존불의 석련대(石蓮臺)는 교묘한 형태와 뛰어난 조각솜씨로

본존불의 위용을 돋보이게 한다.

 

 

 

신라 석불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히는

석굴암 본존불상(石窟庵 本尊佛像 국보 제24호 경주 토함산)

아름다운 균형감각,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가는 눈과 웃음 머금은 입술,

두툼한 얼굴과 풍만한 몸체는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움이 풍겨

동양 조각 최고의 걸작품이고,

그 종교성과 예술성에 있어서 세계 종교예술사상 탁월한 유산입니다.

 

맨 밑에는 평면의 원형으로 된 2단 기대가 있고 이어 복련대가 새겨져 있는데,

복련의 연판은 32개로 웅대하고 화려하다.

전체높이는 약 1.6m, 최하부의 지름은 3.63m, 윗좌대의 지름은 2.72m이다.

석굴의 본존불상 바로 뒤, 전면을 향한 중앙에 지름 2.24m의 크고

둥근 돌을 새겨넣어 두광을 만들었다.

그 주위에 36개의 꽃잎을 가진 연꽃이 조각되어 있고,

전체를 오목한 거울면처럼 만들어 전실에 서서

본존을 예배할 때 바로 본존불의 두광을 향하도록 구상되어 있다.

 

 

 

만든이 : 김대성

만들어진 시대 : 신라 경덕왕 10년 (751년) ~ 혜공왕 10년 (774년)

종목 : 국보 제 24호

있는 곳 : 경북 경주시 토함산

석굴암 본존 불상 : 화강석으로 만들었으며, 높이는 326cm, 세기는 8세기 통일신라 때

가치와 의의 : 가치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로 될 만큼 뛰어나다.

만들기 힘든 화강암으로 제작하였고,

그 위를 흙으로 덮었다. 이 것은 건축, 수리, 기하학, 예술이 종합적으로 어울린다.

보존 상태 : 일제 우체부에게 발견의 의해 헐은 뒤

시멘트 보수 공사 → 박정희 대통령의 2차 보수 공사

(이것도 시멘트로 함) → 지금은 아직 3차 보수 공사를 하지 않았다.

석굴암 본존 불상의 비밀 : 옛날 일제 시대 때, 일본 놈들이

석굴암 본존 불상 이마에 있는 보석을 떼어 갔다.

옛날 김대성이 조각하였는데, 실제로 이것은 불상이 아니라고 한다.

조각해 놓은 석굴암 본존 불상은 불상 즉 부처님이 아니고

항마촉지인이라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즉 깨달음을 얻었지만 부처가 되지 못하고 대마왕에게 유혹당해 마로 들어간 항마촉지인이다.

역사적 사실 : 석굴암을 지어 부처님께 나라를 수호해 달라는 바램이다.

석굴암의 구조와 특징 : 석굴암의 구조적 특색은 무엇보다

화강암의 자연석을 다듬어 인공적으로 축소한 석굴사찰이라는 점이다.

즉, 인도․중국 등의 경우와 같이 천연의 암벽을 뚫고 조성한 천연석굴이 아니다.

 

 

 

 

 

 

동양 조각 최고 걸작 ‘석굴암 본존불상’

 

신라 석불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히는

 ‘석굴암 본존불상(石窟庵 本尊佛像·국보 제24호·경주 토함산)’은 석굴암에 있는 석불

 가운데 가장 눈여겨볼 예술품이다.

대좌까지 합쳐 약 500cm나 되는 큰 상이며 신체의 비례가 알맞고

각 부분이 세련된 솜씨로 조각돼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부처의 형상을 하고 있다.
연꽃무늬가 새겨진 받침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 자세로 약간 뒤쪽으로 치우쳐 있다.
앞에서 볼 때 매우 아름다운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가는 눈과 웃음 머금은 입술, 두툼한 얼굴과 풍만한

몸체는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움이 풍겨 가히 동양 조각 최고의 걸작품이라 부를만하다.
본존불상은 왼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는 드러낸 채 법의를 걸쳤으며

두 다리는 책상 다리하고 앉아 있다. 오른손을 풀어 오른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 끝을 가볍게 땅에 댔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해서 배꼽 앞에 놓고 있는데,

 이는 부처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간략한 옷 주름 표현은 상 전체의 단순한 조형성을 강조해주며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긴장감과 신비한 종교성이

어우러져 예배하는 사람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드는 종교예술의 알짜를 보여준다.
본존불상의 고요한 모습은 석굴 전체에서 풍기는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신비로움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은 내면에 깊고 숭고한 마음을 간직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담은 듯해 자비로움이 저절로 전해질 듯하다.

아무런 생명도 성격도 없는 돌을 깎아 영원한 생명과

절대자의 이미지를 부여한 것은 종교의 믿음을 담은 예술혼이다.

그 예술성을 비판하거나 의심할 사람은 없다.
화함과 엄숙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본존불상의 손끝과 발끝을 보면 맥박이 뛰고,

숨을 쉬는 듯해 살아 있는 인간의 형상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본존상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비례를 보면 당시 미적 감각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석굴암 본존불상의 얼굴 너비는 2.2자, 가슴 폭은 4.4자, 어깨 폭은 6.6자,

양 무릎의 너비는 8.8자로 1:2:3:4의 비율을 보여준다.

여기서 기준이 되는 1.1자는 본존불상 자체 총 높이의 10분의 1이다.

10분의 1의 비율은 로마 신전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서’에 나오는

가지런함 비례(Symmetry)로, 본존불상 자체를 1로 보았을 때

10분의 1이라는 가지런함 비례가 석굴암의 본존상에 적용되었던 것이다.

그는 건축미는 건물 각 부의 치수관계가 올바른 균제비례를 이룰 때 얻어진다고 했다.

이 비례는 실제 사람의 모습에서 얻어진 것이다.

 턱에서 이마 끝까지의 얼굴을 재보면 신기하게도 전체 키의 1/10이다.

또 손목에서 가운뎃손가락 아래 선까지 손바닥 길이는 팔 길이의 1/10이다.

 1200년 전 신라인들은 인체의 안정감과 아름다움의 비율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었고

석굴암 본존불상에 적용했다.

석굴암은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석굴암이 시대의 건축미를 대표하는 꽃이라면 그 시대의 종교와 과학,

신라인의 예술성은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자양분을 공급하는 뿌리였을 것이다.

 

 

석굴암의 38구 불상은 무슨 의미일까

 

석굴암의 사상적 배경은 화엄종이었을까, 유가종(법상종)이었을까.

아니면 화엄종에서 유가종으로 바뀐 것일까. 석굴의 본존불은 비로자나불일까,

아미타불일까. 아니면 석가모니불일까.

석굴암 전실은 본존불과 함께 조성했을까, 후대에 추가한 것일까.
국보 24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북 경주 석굴암(토함산 석굴).

751년 석굴암을 조성하기 시작한 지 1260년이 흘렀다.

이를 기념해 석굴암의 다양한 불상을 집중적으로 검토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한국미술사연구소가 8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하는 ‘토함산 석굴 불상의 최초 종합적 연구’.
석굴암에는 본존불을 비롯해 10대 제자,

십일면관음보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감실존상, 제석상,

 범천상, 사천왕상, 인왕상(금강역사상), 팔부중상 등 38구의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동국대 명예교수),

김은선 대전선사박물관 학예사,강삼혜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사,

박형국 일본 무사시노(武藏野)대 교수, 김은화 문화유산기록보존연구소 실장,

미즈노 사야 가나자와(金澤)미술공예대 교수, 임영애 경주대 교수 등

20여 명의 불교미술 전문가가 발표와 토론에 참여한다.

그동안 석굴암 전체의 의미를 규명하는 연구와 학술대회는 많았지만

이들 불상을 개별적으로 논의하는 학술대회는 처음이다.

학술대회를 기획한 문 소장은 “석굴암은 차이티야(단일 예배굴) 석굴과 38구의 불상군이

정연한 체계를 이루고 있는 세계 유일의 예”라며 “석굴암 불상군의 전체와 개별상 등을

유기적으로 분석하고 통섭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본존불. 문 소장은 ‘토함산 석굴의 유가종 사상과

본존불상’ 논문을 통해 석굴암의 조성 사상과 도상 해석을 연결시킨다.

그는 “‘삼국유사’나 2009년 발견된 ‘석가탑 중수기’ 등을 분석한 결과

토함산 석굴은 유가종 또는 유가밀교종에 의해 조성되어

조선 초까지 시종일관 이어졌다”고 설명하며

 “본존불의 수인(手印·손의 모양)이 항마촉지인인 데다 십일면관음상이나

지장보살 등 불상의 배치 상황 등으로 미뤄 본존불은 석가모니불”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또 “석굴 불상의 도상은 ‘다라니집경’에 따라 유기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표현함으로써

호국불교, 불국토 수호의 정신을 훌륭하게 구현한 위대한 불상”이라고 평가했다.

미즈노 교수의 ‘팔부중상’ 논문도 흥미롭다.

석굴암의 앞쪽에는 전실(前室)이 있고 이 전실의 좌우 벽에는

팔부중상(불법을 수호하는 불교신)이 조성돼 있다.

미즈노 교수는 팔부중상 조각을 전남 구례 화엄사 서5층석탑,

경북 영양 화천동 3층석탑 등 9세기 후반 석탑의 팔부중상과 비교한 뒤

 “현재의 전실은 석굴암 창건 당시가 아니라

9세기 후반 이후부터 10세기 전반 사이에 증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놓고 8일 학술대회 현장에서 뜨거운 토론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석굴암 본존불좌상

 

석가모니불 / 지장기도 도량 영선사 주지 월공스님 독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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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
글쓴이 : 참마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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