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는 23일 일제 시기 강제동원 피해자 및 유족들이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기증한 사진, 문서 등 자료 379점을 담은 ‘강제동원 기증 자료집’을 공개했다.
자료집은 2005년 2월 위원회 출범 당시부터 172명이 기증한 자료들로 이뤄져 강제동원의 역사를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군인·군속 및 노무동원 사진자료 253점, 명부자료 24점과 문서자료 68점, 박물자료 및 기타자료 34점으로 이뤄져 있다.
사진 자료의 특징은 대부분 일제기관과 일본회사에 의해 미화됐다는 점이다. 절제된 자세와 단정한 차림의 사진 속 인물들에게서 강제동원의 흔적은 선뜻 발견되지 않는다.
강원도 강릉지역 여성들이 ‘국민총력 용강동(강릉)연맹 부인부’ 결성을 기념하는 근로봉사를 하며 찍은 사진. 검은 치마, 흰 저고리 차림의 젊은 여성들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있다. 갓난애를 업은 여성도 있다. 뒤쪽에 일본 군복 차림의 남성들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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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왕이 조선인 징용자 사망자에게 보낸 부의금 봉투 모습. ‘世田森平’이란 사망자의 한국 이름은 주삼평이라고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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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에 징집된 젊은 조선인 훈련병들이 서울 거리에서 이동하고 있다. 머리에 두건을 두른 채 일장기를 든 환영 행렬이 이채롭다. 전차와 나무로 된 전봇대, 일식 풍의 건물들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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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징집을 앞둔 젊은이들이 충북 홍성공립보통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홍성은 지금은 충북이 아니라 충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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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육군병지원자 훈련소 훈련생들이 동대문 앞을 행군하고 있다. 1941년 9월12일 사진으로 추정된다. 전차 철로와 넓은 광장 등이 지금의 동대문 풍경과는 매우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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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구시로시 샤쿠베쓰 탄광의 한 갱 입구에서 찍은 조선인 노무자들의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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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7월13일 일본군에 징집된 조선인들이 서울에 있던 조선신궁에서 허리를 굽혀 참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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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 숨은 강제 동원과 열악한 노무환경의 ‘진실’이 담겨 있다.
이번 자료집에는 전시 군인 동원을 부추긴 흔적이 엿보이는 홍보목적의 군인 동원 사진이 다수 담겼다. 주로 군사훈련이나 사열 장면, 현역병과 학도지원병들의 단체 사진, 징병 환송식 사진과 입대 기념 사진 등이다.
조선총독부 육군병 지원자 훈련소에서의 스모 대회 장면이나 군사 훈련 장면들은 당시 군인 동원 현장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노무동원 사진으로는 탄광 입구에서의 단체 사진이나 합동장례식 장면, 귀환자 단체 사진 등이 눈에 띄었다. 군속 동원 사진은 희귀한 편으로 선박 주유수 동원 사진이나 단체 사진 정도가 실렸다.
명부 및 문서자료는 강제동원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명부 자료 중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선별된 10점은 ‘위인정자료(증거가치가 높은 자료)’로 등록돼 위원회에서 피해자 규명을 위한 1차 증빙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명부들에는 강제동원된 인물들의 성명과 주소, 피해자 개개인의 동원 배경과 사유, 동원 과정 및 경로들이 기재돼 있다.
문서 자료에는 군인 및 노무수첩, 급여명세표, 출근부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문서들은 정부·기업·단체와 피해자 사이에 오간 것으로 임금 수준과 지급방법, 노동시간, 사망사고 처리 등의 내용을 망라하고 있다.
박물 자료는 피해자들의 고된 삶을 말해주는 유품들이다. 입대 당시 사용한 어깨띠나 일본군 계급장, 군용 수통이나 반합, 탄광에서 사용한 칸델라(휴대용 석유등) 등 강제동원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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