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교육헌장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에서 누구나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 학급 학생 모두가 암기했는지 시켜본 뒤에야 학생들을 귀가시키는 선생님도 있었다. 박완서 소설 '너무도 쓸쓸한 당신'이 당시 상황을 전한다.
'그가 담임 맡은 반은 온통 국민교육헌장으로 도배를 했고, 한 아이도 빠짐없이, 지진아까지 그걸 달달달 외우는 반으로 유명했다. 그걸 입술로만 외우는 게 아니라 뜻을 충분히 새겼다는 걸 알아보려는 경시대회가 군내에서 있었는데 그의 반은 거기서도 일등을 먹었다.'
국민교육헌장 외우기의 어려움은 박민규가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국민교육헌장 암기의 가장 큰 함정은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開發)하는 것이 아니라 계발(啓發)한다는 대목이었다. 나름대로 통달을 자부하던 아이들도 애당초 계발을 개발로 잘못 외워 매를 맞기 일쑤였다. 나는 계발이 무슨 뜻인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외우는 게 상책이라 특히 발음에 유의해 그 부분을 낭독하곤 했다. 아마도 내가,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타고난 나의 소질을 개발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처럼 계발을 개발로 말하여 매 맞아가며 외우기도 해야 했던 국민교육헌장은 대한민국 국민이 이 땅에 태어난 이유, 목적을 이렇게 제시해주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이 땅에서 탄생의 고고성을 울린 모든 신생아들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의 무게가 버거워서 그렇게 크게 울었던 것일까?
그 국민교육헌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고고성을 울린 때와 장소는 1968년 12월 5일 오전 9시 30분 서울시민회관이었다. 같은 해 7월 26일 대통령에게 보고됐던 원안은 최종 선포된 것과 문장이 많이 달랐다. 예컨대 원안 첫 부분은 '민족 중흥은 우리 국민의 거룩한 역사적 사명이다'였다.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해야 했던 것은 물론 국민학생들뿐이 아니었다. 중고교생들도 암기해야 했던 것은 물론(모든 교과서 앞머리에 실리기도 했다), 입학시험과 국가고시 심지어 입사시험에도 사실상 의무적으로 관련 문제가 출제되었기 때문에, 국민교육헌장을 피할 길은 없었다. 국민교육헌장의 시대는 민주보다 반공이 앞서고(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 개인보다 국가가 우선시되는(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 시대였다.
문민정부 시절인 1994년 국민교육헌장은 교과서에서 삭제되고 공식적인 기능이 사실상 소멸됐다. 국민교육헌장 전문(全文)을 보려면 이젠 인터넷 검색을 해야 한다. 나의 발전이 나라의 융성의 근본이 되는 시대가 비로소 열린 것인가.
글 : 김동식·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 | 일러스트레이션 : 박광수
출처 : 조선일보 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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