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國이 보관중인 朝鮮時代寫眞
우리 나라 최근세사의 애환을 느낍니다. 오늘날의 우리 나라는 어떤가요? 비약적인 경제발전의 놀라움과 흥분 속에서도 비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광복 66주년 !!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를 기원할 뿐입니다 !!
1880년대 당시의 남대문
1880년대의 남대문 중앙로
조선시대의 길거리를 가운데 두고 늘어선 초가집
1931년 박흥식(朴興植)이 서울 종로(鍾路)2가에 세운
"화신 백화점"
화신백화점은 1987년에 문을 닫았고 1988년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되어
1999년 그 자리에는 미국 건축가 설계로
"삼성 종로타워"가 들어섰다.
1935년 서울 남대문
왼족의 상업은행과 오른쪽 중앙 "레토크림"
평양에서 영업중인 왕복 노면전차 -운임 5전-
1942년 흥남공업 도시
조선 질소비료공장 . 일본 마그네슘 . 조선광업 등
수풍 댐 수력 발전소
일제 강점기인 1937년에 만주국과 조선의
전력확보를 위해 건설이 개시되었다. 건설된 것은 압록강하류의 평안북도 신의주부터
80 km지점의 한만국경(현재는 중.북 국경).
담수면적은 일본 비와코의 거의 반에 상당해 총공비는 약 5억엔이다. 태평양전쟁이 한참인 1944년 3월에 수풍수력
발전소(발전 능력 60만 kW)와 함께 준공했다. 이 발전 규모는 당시의 세계 최대급이며 1940년 당시의 일본내의 수력 발전 규모가
280만 kW와 비교해도 그 크기는 용이하게
비교할 수 있다. 전쟁 당시인 1945년 8월 9일
소련군이 침공하여 총 7기의 발전기중
5기를 약탈해 갔다. 약탈된 발전기는 카자흐스탄 공화국,
이리티슈 카와카미류의
댐에서 확인되었다.
1940년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호텔 "조선호텔"
무용가 崔承喜의 모습
고종 황제 대한제국 황궁인 덕수궁 석조전에서 촬영한
황실가족 사진. 왼쪽부터 영친왕, 순종, 고종황제, 순정효황후, 덕혜옹주
라스트 프린세스 덕혜옹주(1912∼1989) 1897년10월12일 고종의 황제 즉위를 축하하는
덕수궁 대한문(대안문) 앞은 백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고종황제의 장례행렬
1919년 1월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고종황제가 승하했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을 둘러싼 독살설은
전국으로 퍼져 3.1운동의 기폭제가 된다. 1919년 19살의 영친왕비 이방자(1901~1989)
여사와 진왕자가 탄생했을 때의 영친왕 부부.
덕수궁 석조전에서 영친왕(가운데)의 모습
영친왕비 이방자(1901~1989) 여사의 일본친정
대담했던 한국 아낙네들 톱레스 치마 저고리
문명사회에 있으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원시적 이었던 조선시대 아낙네들의 대담한 모습 당시 양반계급의 여성이 외출 때의 모습
노점상, 비녀를 비롯하여 면빗, 얼레빗, 참빗들이
꽈배기 장수의 청년과 소년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의 붕괴사고 장면
원인은 영추문 바로 옆을 종점으로 하여 운행된
전차의 진동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독뚜껑위에 자배기를 지게에 교묘하게
올려놓았다. 이 당시에는 자배기와
독뚜껑은 특히 여인들이 잘 깨뜨리는 그릇이었다.
닭을 어리에 넣고 짊어지고 팔러 다니는 닭장수
옹기그릇 시장
한강 용산 나룻터
참숫 팔러 가기
1900년 무렵의 조선 호랑이 사냥군들
여성들이 외출때에 쓰는 파라솔, 양산 대용 평양의 장터 길
일본의 조선 철도 기공식
당시 신작로가 전부였던 조선에 일본인들에 의해
조선반도 곳곳에는 급속히 철도가 부설되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는 그 길이는 총영장 5, 000km에 이르렀다. 천하 대장군과 천하 여장군
기생의 나들이
서당의 학생들 쌀 티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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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어디로 갈꺼나
글쓴이 : 이강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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