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자료/일본 자료

[스크랩] 2차대전 일본 패망의 기록사진

감효전(甘曉典) 2012. 2. 2. 21:08

 

 

                                 2차대전 종전기록사진 - 1945년 8월

 
                                                                日本 패망
2007.8.12._023.jpg
 
B-29  폭격으로 쑥대밭이 된 도꾜산업지역
도꾜는 53.8% 가 파괴되었고 67십만 인구가 24십만으로 줄어 들었습니다.
 
2007.8.12._035.jpg
 
원폭으로 완전 파괴된 나가사끼.
 
2007.8.12._009.jpg
 
오끼나와에 있던 일본군들 12명이 투항하는 모습입니다.
일본은 전쟁에서 죽는 것은 영광이라고 선전하면서 항복은 있을수 없다라고 교육했습니다.
프로파간다는 일본군의 자살을 막기위하여 삐라를 쁘리며 노력한 결과
쾀을 점령한지 10개월 만에 산속 동굴에 있던 일본군 35명이 투항하기 시작 했습니다.
일본의 패전이 짙어가고 미군에 투항해도 죽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항은 늘어나기 시작 했습니다.
오끼나와에서 9498, 아이오지마에서 1038, 싸이판에서 2161, 쾀에서 524, 타라와 150명 등
수없이 많은 일본군들이 투항해 왔습니다.
 
2007.8.12._007.jpg
 
1945814(일본은 815) 투르만 대통령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국민에게 발표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2007.8.12._006.jpg
 
일본항복이 알려지자 밖으로 뛰쳐나온 쌘프란시스코 시민들 중에서 여성들이 베개를 들고나와 기쁨에 넘치는
베개싸움을 벌리며 좋아하는 모습입니다.
 
2007.8.12._005.jpg
 
거리로 몰려나와 축하 함성을 지르던 뉴욕시민들이 너무 기뻐서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도 포옹했는데
Life magazine's photographer Alfred Eisenstaedt 의 대표작
수병과 힌옷입은 간호원의 키스 사진은 가장 유명한 사진으로 세계인의 기억에 남아 있었습니다.
 
2007.8.12._061.jpg
 
사진의 인물중에 간호원은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사진속의 수병이었다고 나섰었습니다.
그때마다 경찰은 사실규명을 해야 했었고 간호원 기브슨씨는 자문을 했었습니다.
2007.8,4. 80세의 그렌 맥더피씨가 그인물임이 밝혀졌습니다.
간호원 기브슨씨도 그가 맞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맥더피씨의 말에 의하면 그당시 18세 였던 그는 너무 행복해서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브르크린에 살고있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던중에 간호원을 만났습니다.
그녀도 나를 보고 큰소리를 지르며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었습니다.
나는 막 달려가서 그녀를 끼어안고 키스를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나눈 말은 없었습니다. 그후 곳바로 길건너 전철역으로 향했고 부르크린으로 갔습니다.
지금 80세의 맥더피씨는 페암으로 병원에 입원중에 있습니다.
 
2007.8.12._020.jpg
 
일본에게 항복절차를 논의하기위한 회의를 마닐라에서 개최했습니다.
819일 마닐라에 도착한 맥아더 장군이 공항에서 군악대의 환영연주를 듣고있습니다.
'내가 들어본 연주중에 가장 감명깊은 순간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회의장으로 갔습니다.
 
2007.8.12._012.jpg
 
맥아더장군의 명령에 따라 일본대표는 군용기를 힌색으로 바꿔 칠하고 녹십자를 그려 붙인 비행기를 타고
191244분 이에시마섬에 착륙했습니다.
중장 도라시로 가와베와 그일행이 12명이었습니다.
미국측 준장 찰스 윌로비가 안내를 하고있습니다.
맥아더 장군과 회의를 하기 위하여 미군 비행기로 갈아타고 마닐라로 갔습니다.
일본 대표들은 갖고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파인애풀 주스를  마셨습니다.
식사후 미국담배와 군표(군인들이 사용하는 돈)을 권했으나 거절했습니다.
 
2007.8.12._016.jpg
 
장 윌로비의 안내를 받작은키의 가와베중장이 키큰 미군 준아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2007.8.12._013.jpg
 
마닐라 회의광경입니다.
19시간 만에 떠나는 일본 대표단의 가방속에는 항복문서와 절차, 맥아더장군이 일본총독이 된다는 문서가 담겨저 있습니다.
 
2007.8.12._003.jpg
 
194592일 도꾜만에 정박해있는 미함대 미조리함에서 항복식이 거행되었읍니다
천황을 살려준다는 조건하에 일본은 무조건 항복에 싸인했읍니다.
 
2007.8.12._026.jpg
 
2007.8.12._058.jpg
 
맥아더장군의 서명.
 
2007.8.12._057.jpg
 
일본 마지막 외무대신 마모루 시게미수가 천황을 대신해서 서명하고있습니다.
 
2007.8.12._059.jpg
 
일본군 중장 우메주가 서명을 하고 있고 그뒤에 서있는 부관이 눈물을 딱고있읍니다.
 
2007.8.12._028.jpg
 
항복문서에는 그외에 중국, 영국, 쏘련, 오스트리아, 카나다, 프랑스, 네델란드, 뉴질랜드 대표가 서명했습니다.
아침부터 날이흐려 우중충했었는데 모두 서명을 끝내자 도꾜만에는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위로는 400대의 B-29가 떠있고 그 밑으로 1500대의 전투기가 편대를 지어 미조리함 위를 날았습니다.
드라마틱한 순간이었고 마지막 승리에 대한 경의였습니다.
 
(주지할것은 독도와 관련하여 천황이 대리서명케 한 본 문서 중에 도면으로도
명시되어 있는 독도는 한국땅으로
패전일본의 철수대상 강점지로 명백히 표시되어 있는 것 입니다)
 
 
2007.8.12._029.jpg
 
미조리함을 떠나기전 일본대표단의 굳은 표정입니다.
항복문서는 미국이 한장 밀본이 한장씩 보유하기로 하였습니다.
미국은 5000명의 가미가제가 존재한 일본을 이해할수가 없었고 항복했다고 해도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111일 일차로 6군을 규슈에 상륙시켰습니다.
에어본 특수부대가 먼저 도꾜에 들어가 기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뜻밖에도 일본인들이 적대시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후에
1946년 봄에 8군과 10군을 도꾜에 상륙시켰습니다.
 
2007.8.12._039.jpg
 
전후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열차는 만원이었습니다.
 
2007.8.12._040.jpg
 
집으로 돌아가는 일본병사들도 즐거워 하는 표정입니다.
 
2007.8.12._041.jpg
 
원폭 피해자들입니다.
 
2007.8.12._042.jpg
 
전쟁통에 헤어진 가족들을 찾기위한 광고문들입니다.
새로 이사간 집 주소를 적어놓고 있습니다.
 
2007.8.12._024.jpg
 
폭격으로 페허가 된 오사까 성입니다.
 
2007.8.12._043.jpg
 
천황이 맥아더장군을 예방하겠다고 해서 장군이 미 대사관에서 천항을 만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천황을 신으로 모시고 있었지만. 맥아더장군은 히로히토를 인간으로 만나는
자리라 넥타이를 안매고 만났다고 합니다.

 

출처 : 어디로 갈꺼나
글쓴이 : 이강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