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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탄의 구멍이 25개인 까닭은 무엇일까?

감효전(甘曉典) 2012. 2. 2. 21:00

 

연탄의 구멍이 25개인 까닭은 무엇일까?

사진이야기 2011/12/27 14:03 나무(我無)


삶이 퍽퍽해질수록, 한 나라의 경제가 흔들릴수록 자주 보게 되는 것은 바로 리어카이다.
요즘은 주로 폐지경쟁에 뛰어들지만, 이전에는 포장마차나 붕어빵 혹은 군고구마, 군밤장수에게도 리어카는 필수였다. 경제가 퍽퍽하면 리어카만 많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800cc급 소형차들도 CCTV 사각지대에 주차를 시켜놓고 이런저런 군것질거리를 팔기도 하고, 퇴근길 식욕을 자극하는 오뎅이나 떡볶이, 통닭을 팔기도 한다.

리어카.
우리말로야 손수레라고 하지만, 그래도 '카(CAR)- 차'의 반열에 들어가는 것은 바퀴가 달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가도, 그래도 차라는데 위안을 받는다.

자전거.
요즘은 레저용 자전거들이 제법 비산 가격에도 나오고 있어 이런저런 이름들로도 불리우지만, 이전엔 '자전차'라고도 불렀다. 이것도 바퀴가 달렸으며, 리어카보다는 훨씬 빠른 교통수단이었으니 '차'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요즘은 자주 볼 수 없지만, 80년대만 해도 동대문, 청계천에만 나오면 짐자전거 천지였다. 곡예를 하듯 짐을 싣고 골목을 오가는 이들의 다리통은 근육으로 단단했다. 간혹, 비썩 말랐음에도 불구하고 큰 짐자전거를 끄는 이들을 보면 '생활의 달인'을 보는 듯 신기했다. 지금은 그 자리를 오토바이가 매우고 있지만, 이렇게 동그런 바퀴는 서민들의 삶에 아주 큰 기여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이다.

바퀴는 아니지만, 둥근 것이 또 있다.
예전에 흔히 볼 수 있었다가 사라졌는가 싶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다시 등장한 연탄이다.
나는 정확하게 구멍이 몇 개인지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25개란다. 연탄집게로 집기에도 적당한 크기의 구멍이요, 공기가 통하기에도 적당한 구멍이요, 서민의 삶을 채워주기에 너무 빨리 타버려도 안 되는 적당한 연탄의 무게를 만들어내는 구멍의 크기가 25개인 것이다.

요즘은 연탄 한 장에 얼마하는지도 모른다.
800원이라고 들은 것도 같은데..... 각설하고 어렸을 적(그러니까 70년대)에는 연탄을 쌓아두는 것이 김장과 함께 월동준비의 기본이었다. 그때 보통 리어카에 100장 혹은 50장 정도를 실을 수 있었는데, 연탄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 장당 1원씩이었다. 그러니까 100장을 나르면 100원, 천 장을 나르면 천 원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간식거리 쭈쭈바가 100원 하던 시절이니, 지금으로 쳐도 장당 10원정도일 터이고, 천 장을 나르면 1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다고 보면 될까?

내가 살던 동네는 평지고, 넓은 신작로를 따라 집들이 있어서 연탄배달을 하는 일이 힘들지는 않았다.
학교를 마치면 연탄가게로 달려가 배달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공부보다는 돈버는데 재미가 붙은 것 같았다. 초등학생임에도 방과후에 500장은 날랐나보다. 그래도 한 달 모우면, 1만원이 넘는 돈, 그 당시로서는 작은 돈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도 가끔 따라서 해보긴 했지만, 100장만 나르면 온 몸이 뻐근했고,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알면 경칠 일이었기에 쭈쭈바 하나 먹고는 그만 두었던 듯하다.

그리고 고3시절, 돈암동에 잠시 살면서 산동네, 달동네, 리어카가 올라갈 수 없는 골목길을 보게 된다.
가난한 이들이 사는 그곳, 연탄배달이 몇 곱절 힘든만큼 배달료도 더 비싸다는 것도 알았다. 부자들보다 가난한 이들이 더 많은 난방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는 사실, 그것이 어쩌면 이 사회의 부조리함에 눈을 뜬 첫 번째 사건일수도 있다. 그대부터 겨울이 완벽하게 싫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겨울이라는 계절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다 잊었다 생각했는데, 얼마전 연탄가게를 보았다.
그런데 연탄에 난 구멍이 25개란다. 별 다섯개 침대마냥...25개인것도 이유가 있는듯하니 짜하다.
한 15개 정도면, 조금 더 서민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지진 않을까. 아니, 그러면 제대로 공기가 통하지 않아 꺼질까?
출처 : 어디로 갈꺼나
글쓴이 : 이강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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