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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총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좌익 의혹을 씻기 위한 조치였다"라는 흥미로운 증언

감효전(甘曉典) 2016. 10. 17. 01:23

 

 

 

 

 

 

 

 

 

당시 혁명공약과 포고문을 직접 작성한 김종필 전 총리는 "혁명공약을 쓸 때 내 머릿속에는 혁명의 지도자인 박정희 장군의 제일 아픈 데가 뭐냐, 빨갱이라고 생각하는 주위 사람들 아니냐"라며 "이것들을 불식하려면 한마디 해야겠다, 그래 가지고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삼고'라는 내용을 6개 공약 가운데 첫 번째로 집어넣었다"라고 회고했다.

 

박정희·김종필 등 5·16 군사쿠데타 세력들은 당시 군사혁명위원회(국가재건최고회의의 전신) 명의로 6개항의 '5·16 혁명공약'(상자기사 참조)을 발표했다. 이 6개항의 '혁명공약' 가운데 첫 번째가 '반공을 제1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인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강화한다'였다.

 

그동안 5·16 군사쿠데타 세력들이 '혁명공약'의 첫 번째로 '반공 국시'를 내세운 것은 당시 혁신계와 대학가 등에 확산되고 있던 용공적 통일 논의를 일소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그런 가운데 김 전 총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좌익 의혹을 씻기 위한 조치였다"라는 흥미로운 증언을 내놓은 것이다.

 

'박정희 좌익 의혹'이란 1946년 7월부터 1948년 11월 사이에 남로당(남조선노동당)에 가입한 뒤 군내에 비밀세포들 조직해 대한민국 정부를 무력으로 전복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지난 1949년 2월 군사법정에서 박정희 당시 육군본부 소령은 국방경비법 제16조 위반('반란기도죄') 혐의로 사형구형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김 전 총리는 "박정희 장군은 자기의 사상을 미국도 의심하고, 군 내부에서도 의심하는 데다 실제로 남로당에 연루된 혐의로 사형 구형까지 받았던 경력이 있어 좌익 콤플렉스를 아주 크게 느끼고 있었다"라며 "이 때문에 박 소장이 혁명 후에도 '나 그만두겠다'는 소리를 여러 번 했다"라고 증언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재심에서 감형과 동시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뒤 강제로 예편됐다. 하지만 백선엽 당시 육군본부 정보국장의 배려로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무급 무관으로 근무하다가 지난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직후 현역으로 복귀했다.

 

"박 대통령이 죽기 1년 전부터 사고력이 떨어졌어... 불가사의야"

 

김종필 전 총리는 자신이 이끌었던 현대사에도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먼저 5·16 군사쿠데타에는 "쿠데타면 어떻고 혁명이면 어떠냐 말이야, 5·16은 우리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본질적 변화를 이끌고 실적을 남겼어"라며 "그게 바로 혁명이야"라고 일갈했다.

 

김 전 총리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도) 혁명할 때 목숨을 건 마음가짐으로 내가 나섰어"라며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대륙의 맹장처럼 매달려 있는 신세야, 국교를 정상화하고 일본을 디딤돌로 해서 태평양, 대서양으로 나가야겠다고 결심한 거야"라고 평가했다.

 

김 전 총리는 "김재규가 총을 꺼낸 것은 충성경쟁에서 차지철에게 패배했기 때문이야"라며 "그렇게 영민하던 박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1년 전부터 사고력이 떨어졌어,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야"라고 회고했다.

 

한편 <중앙일보>는 내일(3일)부터 김 전 총리의 현대사 육성증언을 연재한다. 이를 위해 박보균 대기자와 전영기 전 편집국장 등이 지난 10월부터 그를 인터뷰해왔다. '내 생애에 회고록은 없다'고 장담했던 그가 어떤 현대사 증언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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