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서민들 정이 오가던 ‘골목길의 풍경’
“평생 계속할 것 같던 구멍가게의 문을 닫던 날, 우리 식구 중 한 명도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가족의 삶을 어떤 때는 질퍽하게, 또 어떤 때는 차지게 만들어 주었던 구멍가게….
힘들고 고단했지만 부모님의 땀과 정성,
그리고 우리 오남매의 유년과 추억이 한데 어우러진 행복한 보금자리였다.”
구멍가게 앞의 평상에 앉아 한가로이 노는 아이들.
가난한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의 응어리가 어디 구멍가게 오남매의 아버지 가슴에만 맺혀 있으랴.
구멍가게 주인 못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그곳의 손님들이었다.
연탄 두서너 장과 봉지 쌀로 근근이 ‘현금 영수증’을 끊듯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수많은 장삼이사들에게도 구멍가게는 기억 건너편의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1960~80년대 골목마다에는 고만고만한 구멍가게들이 자리해 있었다.
지역에 따라 ‘점방’으로도 불렸다.
60년대 중반부터 보급된 라면을 비롯해 성냥, 비누, 연탄, 쌀,
담배 등 생활필수품부터 야채와 생선까지 공간은 작았지만 없는 게 없었다.
특히 유리상자에 담겨있던 ‘센베이’ 과자와 ‘눈깔사탕’은 아이들을 유혹했다.
지금은 중년이 됐을 ‘녀석들’은 주인장 몰래 몇 알의 사탕을 손에 쥐고 ‘죄와 벌’을 경험해야 했다.
구멍가게의 역할은 무궁무진했다.
동네가 낯선 이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했으며,
간밤에 누구네 집 부부가 어떤 일로 한바탕 싸움을 했더라는 ‘뉴스’와 건너뛴 TV 인기드라마
줄거리까지 알려주는 ‘정보검색’, 학교에 늑장부리는 아이들에겐 ‘알람기능’, 카드칩은 없었지만
외상거래로 이미 신용사회까지 구축했다.
그러나 재개발 광풍이 일면서 골목과 함께 구멍가게들도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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